개도국 원조, 한국식 성장모델 전수로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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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개발도상국에 대한 개발원조사업(ODA)의 DNA가 바뀌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원장 정재훈, 이하 KIAT)은 24일 도로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퍼주기식 개발원조사업을 잠재적 수출시장 확보를 위한 글로벌 협력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빵을 주는 단계에서 개발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이익창출형 지원사업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일회성 프로젝트로는 원조를 받는 국가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수 없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국가별로 차별화된 성장 패키지 프로그램을 제공해 한국과 수혜국 간의 개발 체인을 형성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단순한 사회개발 지원으로는 개도국의 빈곤 퇴치를 이룰 수 없다. 산업역량을 강화해 ‘경제성장→소득배분→빈곤퇴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원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KIAT는 한국의 성장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할 계획이다. 예컨대 농기계, 섬유와 같은 전형적인 중소기업형 산업 기술과 시설을 지원하고, 이를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관리하는 형태다. 또 해당국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는 중화학공업 기반 구축과 같은 중장기 프로젝트를 컨설팅하고, 실행·운영한다. 1970년대 ODA 자금을 받아 중화학공업과 같은 성장 기반을 구축했던 한국의 경험을 그대로 전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술훈련과 교육도 국산장비와 은퇴기술인력을 활용키로 했다. 인력파트십 구축을 통한 인적·기술적 거점 확보 전략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네팔·방글라데시·모잠비크 같은 15개 저개발국에 인도적 지원이나 도로 건설과 같은 인프라 확충을 중점 지원했다. 일회성 프로젝트다. 이러다보니 한국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지분율이 5위인데도 ADB가 발주한 개발컨설팅 수주실적은 2건(2010~2012년)에 그쳤다.

 이에 비해 선진국은 거대 소비시장을 키우는 방향으로 ODA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개도국은 경제성장을 꾀하고, 지원국은 소비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 세계 3위의 ODA국이지만 최빈국을 대상으로 한 ODA 비중은 전체 17.3%에 불과하다. 대신 인도나 브라질과 같은 신흥국에 대한 지원이 많다. 일본은 내수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인도, 베트남 등에 집중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ODA를 활용해 900억 달러에 달하는 인도의 델리~뭄바이 산업회랑 프로젝트(DMIC)를 수주해 기획부터 완료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 중소기업의 인도 진출을 촉진하는 등 글로벌 산업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심지어 현지 정부기관에서 일본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하게 하고, ODA 예산의 상당부분을 현지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생산설비와 기자재 구입, 유지관리비로 지출하고 있다.

 정 원장은 “원조 대상국에 대한 민간부문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ODA 사업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글로벌 산업기술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국익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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