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석유황제 야마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석유황제 야마니/제프리 로빈슨 지음, 유경찬 옮김, 아라크네, 1만8천원

"미국은 중동에서 두가지 목표를 확실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석유입니다. 석유 수출금지 조치를 취했던 1973년을 제외하면 이 두가지 문제가 한번도 조화를 이룬 적이 없습니다.

석유 수출금지가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나머지 미국은 걸프해의 석유를 장기간 통제하기 위해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됐습니다. 어리석은 아랍국가들 덕분에 미국은 성공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초 카이로 국제도서전에 초청 연사로 참석한 자키 야마니(72.사진)는 두시간이 넘게 중동의 위기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전세계 최대 관심사이기도 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염두에 둔듯 '미국이 이라크를 굴복시켜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문제의 핵심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언급했듯이 '석유'와 '이스라엘'이었다. 미국은 이라크만 굴복시키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송유관을 지중해 동부까지 연결해 풍부한 원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중동의 패자가 되기를 원하는 부시의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야마니를 이야기할 땐 석유를 떼어놓을 수 없다. 야마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숨은 실력자로서 세계 석유산업을 탁월하게 통제해 '미스터 오일'로 불린 인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태어난 야마니는 하버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사우디 최초의 국제 변호사로 활동했다. 석유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남자는 당시 파이잘왕의 법률자문 역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향후 25년간 석유장관을 지내며 OPEC 회원국엔 원유 감산을 통한 적정 가격 유지를 호소했고, 중동의 석유산업을 통째로 거머쥐려는 거대국가 미국을 상대로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이 책은 야마니의 개인 활동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한편으론 석유가격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움직임과 이해관계를 세세하게 적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행간을 통해 중동국가들간의 역학관계, 미국과 중동의 갈등, 유가에 따른 각국의 정세와 파장 등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마침내 시작됐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세계 평화를 위해' 전쟁을 단행했다는 부시의 논리에 의문이 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박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