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앓는 병|정다운<불교조계종 총무원 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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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 우주는 환자를 몰아다 놓은 커다란 병실이다.
인간이 앓는 병은 서로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병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보호를 강요하고, 연예인에게 흥미 있는「쇼」를 하게 하고, 국민에게 자기의 정권을 지키게 하며 자식을「액세서리」로 만드는 병이다. 우주만물도 부모형제와 사회도 오직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비위에 조금만 어긋나면 비웃고 꾸짖고 화를 낸다. 자기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틀리기만 하면 원망하고 분해한다. 고독한 사람이 자기의 고독을 달래기 위하여 친구의 손목을 잡고 더 있어 주길 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바쁜 사람의 옷자락을 깔고 앉아 보내 줄 줄을 모른다.
땅덩이와 초목은 인간에게 짓밟히고 꺾기면서도 불평 하나 안 하건만 인간들은 고마움에 앞서 오히려 지나친 갈취와 축적을 위해 싸움질을 벌인다.
자기 몸뚱이도 자기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게 아니라 전생의 인연으로 잠깐 빈 것이다. 그러기에 서투르나마 인생의 연기를 마치면 그대로 산모인 우제에 반납해야 한다. 무수한 사람들이 인간무대를 다녀갔지만 이 반납의 법칙을 어긴 자는 아직 역사에 없다. 그토록 소중한 자기 몸뚱이도 자기 것이 아니건만 쓰고 없애는 물건을 자기 것 인양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가 하면 남의 인격과 자유까지도 영원히 묶어 두려는 무지한 억지를 쓴다.
인간은 영특하다. 우주만물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주를 영구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은 아직 없다. 오직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위해 피를 흘린 자들의 깊은 발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또 있다면 우주만한 종합병원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역사의「페이지」마다「세상은 병들어 있다」는 한 서린 입김만이 묻어 있고 의사와 간호원을 갈망하는 측은한 눈빛만이 그려져 있다.
이 종합병원 병실에서 허덕이는 36억의 환자들이 갈망하는 의사와 간호원은 누구일까?
염치를 알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줄 아는 인간다운 인간이 바로 의사요, 간호원이다. 오늘의 인간들은 믿을 수 없어 대문을 잠그고 온통 인류를 도둑으로 인정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다. 아니 온 인류를 도둑쯤으로 몰아 세우는 어처구니없는 행위에 썩 익숙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종교인마저 담을 두르고, 대문을 잠그고 그것도 모자라서 철조망을 둘러치고 있다.
인지가 발달되고 문명이 고도화함에 따라 인간의 한계성은 희박해지고 인간의 정과 물질의 장벽은 인간을 소외하고 있다. 때로는 인적이 드문 산사에서 과학과 질서와 물질의 노예가 된 쇠사슬을 벗어 던지고 마음껏 가슴 문을 열어 보고픈 게 현대인의 욕구다.
그러나 종교마저 직업화해 버린 지금 세상은 병실에 불과하다.
울타리 없이도 살 수 있었던 미담은 먼 옛날이 아니라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강토에 존재했던 사실이건만 동화책에서 읽은 것만 같이 느껴지는 건 무슨 병 때문일까?
사람들은 내가 환자라는 말 대신에「세상이 병들어 있다」고 말하려 한다. 마치 나만은 건강한 것처럼 위장해 보고 싶은 자기 합리화라는 병에 걸려 있는 증세를 드러내 보이고 싶다.
『이토록 중한 병을 누구에게 치료받을 것인가.』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의사요, 간호원이다.
만인을 구제하지는 못할지언정 자신만이라도 주어진 책임과 임무를 다하겠다는 그 자그만 생각이 쌓이고 모여 자주의 역사를 지켜 온 것이다. 오늘의 인류사회가 그토록 복잡해도 한마디로 표현해서「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자기의 병을 알고 스스로 의사가 되며, 나아가서는 이웃을 간호해 주는 인간의 따뜻한 정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가?」고 도사릴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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