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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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페트로·파워」 (Petro power)라는 말이 있다.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정치 무기화 한 이후에 새로 생긴 단어이다.
「페트로·파워」의 실상을 보자. 10년 전 아랍의 산유국들은 석유 1배럴 당 1달러 미만을 받았다. 73년 중동전이 재발하기 전 만해도 석유가는 1·99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불과 몇달 사이인 73년 말엔 3·44 달러로, 74년 말엔 무려 10달러 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역사상 그처럼 짧은 동안에 세계의 부에 변혁을 가져온 경우는 또 없을 것이다. 13개의 OPEC (석유 수출국 기구) 가입국은 지난 한해 동안에 무려 1천1백20억「달러」를 거두어 들였다. 모든 지불을 감당하고도 남은 잉여 달러만해도 6백억 달러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산유국의 정치적 지위는 하루아침에 강화되었다. 석유 자원이 없는 나라들은「아랍」의 천기만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페트로·파워」는 오히려 미국 소유의 석유 회사들을 하나둘씩 국유화하는 조치마저 강행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인 리더십은 그 동안 말이 아니었다.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는 미국 자신의 발등에 불을 붙여 놓았다. 유럽의 서방 제국은 당하고만 있는 미국의 무력함에 실망과 원망을 퍼부었다.
결국 석유 값은 끊임없이 오르고 산유국의 발언권은 오히려 더욱 큰 위력을 갖게 되었다.
최근 미국은 키신저를 내세워 아랍 산유국들에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산유국들이 석 유소비국들의 목을 조르면 무력 행사도 마지 않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그것이 바로 포드 대통령의 견해라는 뒷북까지 쳐주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무력」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반드시 「탱크」와 비행기만은 아닐 것 같다.
미국은 우선 아랍 세계에 식량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사실 「아랍」 측으로는 석유보다 더 무서운 무기는 식량이다. 미국은 또 석유 발굴에 쓰일 기계 수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랍」은 아직 믿는데가 있다. 소련이 그 갭을 채워준다고 나설 것이다. 미국은 이를 가로막기 위해 기어이 무력을 동원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파성하고 말 것인가?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왕만 해도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급진적인 좌파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또 궁극적으로 소련보다는 미국을 더 믿는다. 따라서 「키신저」의 엄포는 산유국보다는 소비국을 향한 것이 아닐까. 그들의 단결을 호소함으로써 미국의 리더십을 확인하고 싶어한 것이다. 「닉슨」이 잃은 것을 「포드」가 되찾으려는 언행이 바로 그런 엄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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