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밀월에 찬물|미국 새 무역법안의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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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소 관계개선 벽두부터 「흥정」에 무시 못할 지렛대 구실을 해온 소련 내 유대인 자유이민문제가 양국간 통상문제타결 막바지에 접어들어 또 한번 큰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지난 3년간 미·소 협상과정을 통해 소련 측이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고 싶어하는 것 중 최우위를 차지하던 「미국의 소련에 대한 무역상 최혜국대우법안」을 18일 미국 의회가 「소련이 유대인 자유이민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때까지」라는 조건을 붙여 확정짓고, 이를 소련측이 즉각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함으로써 시작된 이 파문은 비록 그것이 해묵은 분규이기는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양국관계의 장래에 몇 가지 불길한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미국이 그와 같은 조건을 붙이지 않을 수 없은 데는 미국 내 유대인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6백만 유권자에다 압도적인 자금력을 유대인들로부터 제공받고 있는 미국 의회로서는 애당초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대인자유이민문제만은 양보 못할 최후선 이었다.
따라서 소련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협상 주역이었던 「헨리·키신저」국무장관의 미국 내 입장을 궁지에 몰아넣는 작용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 의회의 태도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비해 소련측이 이미 「포드」「브레즈네프」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대인이민문제에 대해 뒤늦게 거부반응을 보인 데는 좀더 착잡한 사정이 깔려있는 것 같다. 우선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번 결정이 소련외교가 미국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있는데 대해 불만을 품고있는 소련군부와 일반 국민들에 대한 내수용 「제스처」란 점이다.
이 같은 해석은 「브레즈네프」의 화해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세력이 소련권력층 내부에 움트고있다는 뜻도 된다.
보다 풍성한 소비재상품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서방세계의 기술 및 자금지원이 절실한 소련의 현 실정으로 보아 권부 내에서의 이 같은 반발은 「브레즈네프」개인에게는 앞으로의 정책추진에 큰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으며 또 자칫 개인적인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소련이 무엇보다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은 재 소련 유대인의 「이스라엘」이민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중동 친 소련 국가들을 안심시키고 나아가 「키신저」와 「아랍」지도자들과의 밀착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겠다.
한편 『설마 소련의 진심이 그렇진 않겠지』라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긴 하지만 정말 소련이 「유태인 조건」의 철회를 계속 고수한다면 「키신저」의 대소련 화해정책과 중동평화구상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어쨌든 미국이 유대인 문제만은 양보 않겠다고 버티고 소련이 이 같은 입장을 견지하는 한 미·소 무역협정은 타결을 코앞에 두고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 틀림없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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