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시민「아파트」의 도의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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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제시대에 쌓은 축대는 차라리 그 단단함을 믿을 수 있어도 해방 후에 쌓은 축대는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여항간에 돌고있다. 과학과 기술은 일취월장하는데 만들어내는 물건은 옛 것만 못하다는 것은 얼른 납득할 수 없는 역리이다. 옛 것, 낡은 것이 요즈음 것, 새것보다 낫다면 도대체 역사가 진보를 하는 것인지 퇴보를 하는 것인지조차 알기가 어렵게 된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기술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은 분명히 향상되고 진보하고 있다. 문제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씨에 있다. 그 마음씨가 나락하고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상인들이 만들어내는 단순한 상품인 경우에는 이처럼 상혼의 타락, 상도덕의 문란을 개탄하는 것만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피땀으로써 이룩된 공공예산을 들여 건설하고, 공사감독을 하고, 준공검사를 한 시민「아파트」가 수년이 채 못 가서 헐려야 하는 부실건물이라 한다면, 그것은 세정인심의 타락을 개탄하는 것만으로는 그칠 수 없는 문제다.
전직 김 모 시장 당시에 건설되기 시작한 이른바 시민「아파트」들은 그 착공당시부터 전시효과 위주의 판자집 입체화다,「슬럼」의 반영구화다 해서 시비논란이 많았다. 막상 준공이 되자 2년도 못가서 집째 무너져버린 와우「아파트」사건과 같은 대참사를 빚었다. 그 후에도 이 부실 시민「아파트」는 보수를 해도 안전도를 보장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서울시는 지난 3월만 하더라도 7동의 「아파트」를 헐어 없애면서 나머지는 그 안전도가 충분한 것처럼 장담한 바 있다. 그런데도 내년부터는 다시 6억5천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75년도에 15동, 76년도에 67동, 도합 82동을 철거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 서울시가 세운 4백 34동의 시민「아파트」가운데 5분의 1에 해당하는 건물이 부실 건물로 헐려야 된다는 얘기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만부득사한 조치라 하겠으나 국민의 세금을 이렇듯 무책임하게 낭비한데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건축기술의 하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제1차적으로는 행정책임의 문제요, 더욱 기본적으로는 행정도의의 문제다.
시 당국의 책임 밑에 공사를 맡기고 감독한 「아파트」가 2년도 못되어 저절로 무너지고 10년도 못 가서 일부러 헐어버려야 된다면 그토록 막대한 국고를 축낸 책임을 묻지 않고 무슨 책임정치가 있단 말인가. 그것만으로도 시 당국의 처사는 선량한 납세 시민들에 대한 범죄적인 배신을 준엄하게 지탄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따져야 할 행정의 병폐는 한층 더 깊다. 청부업자와 시청관리 사이에 어떤 불미한 농간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처럼 안전도를 보장할 수 없는 부실건물 속에 지금까지 수천 시민을 입주시키고도 태연할 수 있었던 시 당국의 무신경은 도대체 시청이 시민에 봉사하는 관청인지 시민의 희생 위에 장사를 하는 곳인지 분간키 어렵다 한들 지나친 망언이 될까.
행정도의의 타락상을 여실히 입체화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 같은 부실 시민「아파트」의 존재는 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그 밑바닥에서부터 흔들리게 하는 불신풍조의 「콘크리트」기둥이라 할 수 있다. 시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여 관에 대한 신뢰의 회복에 힘써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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