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은 공리주의자가 아니다-전광용씨가 「이광수 연구서설』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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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대 문리대 전광용 교수(국문학·작가)가 최근 발표한 『이광수 연구서설』이라는 제목의 논문(「동양학」 제4집 게재)에서 지금까지 춘원에 대한 갖가지 연구와 비평을 종합,『춘원은 의식적인 위선자거나 실리적인 계산에 의해 민족을 배신한 공리주의자가 아니라 그의 성격과 주어진 환경의 상승작용이 결국 최후의 춘원 모습으로 응결되었고, 또한 그러한 작자의 의식이 투영된 그의 작품은 그러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 주목을 끌고있다.
지금까지 춘원문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문인들은 김태준 주요한 김팔봉 홍효민 박영희 조령암 김붕구 김우종 신동한 류종호씨 등을 들 수 있고 이들은 『춘원이 소설사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한편 춘원문학을 전체적으로 부정하거나 부분적으로 부정한 작가는 김동인 조연현 안동민 김동석 정태용 김열규씨 등으로 이들은 『사회의식과 현실의식이 결여된 「유토피아」적인 춘원은 신기루 같은 자신의 환경 속에 빠져있다』고 비난했다.
『이해는 항용 변절을 요구하는 것이다. 절만 변하면 해를 면한다. 절만 잠깐 변하면 수가 난다 하는 것은 사람의, 더구나 지도자급인 인물의 일생에 매양 오는 유혹이다. 빈곤이나 생명의 위험은 결코 변절을 정당화하는 이유는 못되는 것이다』(1932년 「청년에게 아뢰노라」).
이것은 춘원 자신이 선언한 변절에 대한 준엄한 논고요 지조론의 기본법전의 조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원은 그러한 지조론의 계율을 깨고 자승자박 격으로 스스로 법망에 걸려 들어간 것이다.
춘원은 자기의 긴 변명에 대하여 반응이 없었을 때 짤막한 참회의 뜻을 『내가 조선신궁에 가서 절을 하고 향산광랑으로 이름을 고친 날 나는 벌써 훼절한 사람이었다. 가장 깨끗하자면 해방의 기별을 듣는 순간에 내가 죽어버리는 것이지만』(「해방과 나」)이라고 적고있다. 긴 변명이 춘원의 정체이고 짧은 참회가 위장된 춘원인지 또는 그 반대인지 판정하기 어려우나 춘원의 내면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전광용 교수는 결국 『사실 임종국씨의 「친일문학론」에 의하면 일제 말엽 1백여명의 문인 가운데 다소라도 일제에 협력을 하지 않은 문인은 10여명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니 춘원만을 유독 문화사에서 중죄로 다루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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