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관광객 발길 '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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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관광특구. 상점마다 할인판매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으나 외국인의 발길이 뚝 끊겨 썰렁하다. 간혹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나타나면 호객꾼 2~3명이 달려들었다.

5년째 가방장사를 하고 있는 박영웅(51)씨는 "북한 핵문제 등으로 지난해 말부터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이라크 전쟁까지 겹치니 앞날이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여중생 사망사건에 이어 북핵과 주한미군 철수 논란 등 잇따른 악재에 시달려온 이태원 상권이 이라크 전쟁으로 결정타를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해 월드컵 당시 이곳을 찾던 외국인은 하루 1만명을 웃돌았지만 최근에는 4천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구매력이 떨어지는 동남아인이 대다수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김태술(60)이사는 "손님이 없어 24시간 영업하던 가게가 요즘은 오후에만 문을 연다"고 말했다.

외국인 상대 유흥업소는 더욱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인 클럽' 종업원 金모(25)씨는 "이라크전이 시작되면서 이튿날 오전 1시까지던 미군들의 외출 허용시간이 당일 오후 7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며 "전쟁 때문인지 일반 관광객들도 잇따라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태원에서 1㎞ 정도 떨어진 한남동 이슬람 성원에서는 전쟁이 벌어진 이날 낮에도 평소처럼 예배가 진행됐다. 예배에 참석한 무슬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침울했다.

특히 이라크에 가족과 친지를 두고 온 무슬림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3년째 한국에 머물며 본국과 무역 중개를 하고 있는 이라크인 마지드 한토(27)는 "바그다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무사하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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