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여성들의 조용한 여권신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구미여성들과 같이 겉으로 요란하게 여성해방운동을 하지 않고도「가나」의 여성들은 지난 50년 후반이래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40∼50년 전만 해도 아이를 못 낳으면 남편에게 소박맞고 가정을 떠난 일에는 일제 관여할 권리를 가질 수 없었던「가나」의 여성들은 이제 가정·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균등. 동일직종에 동일임금·참정권 획득 등 어느 면에서는 구미 선진국 여성들을 앞지르는 여권신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같은「가나」여성들의 여권신장은 56년부터 시작되었다.
56년「가나」가 독립국이 되었을 때「가나」의 초대대통령 고「크와메·응크루마」가「가나」를 독립국으로 이끄는데 미친 여성들의 역할을 크게 평가, 국회에 여성의원의 자리를 10자리 확보해준 것이다. 그후 2명의 여성국무위원, 3명의 여성외교관, 그리고 1명의 여성 정부 고위행정관 등이 생겨났다.
그 이전「가나」의 전통사회에서는 남성은 자녀수가 많을수록 사회에서 평가받았기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여성은 멸시와 냉대 속에 살아야 했었다.
그러나「가나」의 전통적인 결혼관념은 일변, 이제「가나」에서는 누구도 결혼을 꼭 해야만 할 유일한 생활방식으로는 생각지 않으며 자연 독신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나」의 여성들은 또한 다른 나라의 여성들에 비해 가정주부와 사회인으로서의 역할 갈등을 별로 느끼지 않는 편이다.
사회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크게 반대하지 않으며 이 같은 사회의 수용태도는「가나」여성들의 여권신장에 큰 자극제가 되고있는 것 같다. 【로이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