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언론의 건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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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의 일간신문사·통신사·방송국의 일선 언론인들이 경향을 막론하고 며칠 전부터 언론자유를 위한 선언문과 결의문을 채택하고 나섰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일이다.
언론계가 이처럼 스스로의 사명을 다시 다짐하고 그 결의를 외부에 천명하게끔 되었다는 배경은 이 나라의 언론계가 처해 있는 현황이 언론자체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결코 행복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언론계의 불행은 언론과 정부와의 관계가 그동안 행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야기되었다고 단적으로 지적해서 잘못이 아닌 줄 안다.
언론과 정부와의 관계의 불행은 결코 언론만의 불행이거나 정부만의 불행이 아니라 할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국가의 불행이요, 국민의 불행이라 할 것이다.
국가의 안태와 국민의 복리를 위해서는 이른바 『정부 없는 신문』만이 있는 상태나 『신문 없는 정부』만 있는 상태나 그 어느 한쪽도 바람직한 상태라고는 할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이 다같이 건재함이 우리들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초다. 국민은 강력한 정부와 강력한 언론이 있기를 동시에 원한다. 국민은 언론의 눈치만 보고 언론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취약한 정부를 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눈치만 보고 정부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언론도 원치 않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이처럼 서로가 독자적인 강력한 발판 위에 서서 일견 대립되는 듯 싶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목적에 있어선 서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다같은 목적에 봉사하고 있으면서 정부와 언론은 그 소임과 기능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도 자명한 일에 속한다. 만약에 언론이 정부의 소임과 기능을 대신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있어서도 아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에 정부가 언론의 소임과 기능을 대신하겠다 하는 것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정부가 언론에 협조한다 해서 정부의 공보관이 원래 언론이 해야 할 정책비판의 구실을 한다면 그것은 정부관리의 본분에 벗어나는 「난센스」라 할 것이다. 그와 똑같이 언론이 정부에 협조한다 해서 신문기자가 정부공보관이 해야 할 정책홍보를 한다는 것도 언론인의 본분에 벗어나는 「난센스」다.
여기서 철저히 인식해야 할 것은 똑같은 진실도 그것을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른 얼굴로 보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인식의 한계요, 그 자체를 불행하다거나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저마다 다른 입장에서 보아야 할 여러 진실의 측면이 다 드러난다면 결국은 진실의 전체가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있다면 오직 한쪽의 입장에서만 진실을 보고 다른 입장에서 보는 진실의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할 경우다.
「컵」에 물이 반이 찼다고 말하는 긍정적인 언명도 진실이다. 그러나 「컵」에 물이 반이 안찼다고 말하는 부정적인 언명 또한 진실이다. 정부는 정부관리가 부당하게도 정부비판을 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되는 것처럼 언론은 부당하게도 일선 기자가 정부 홍보관의 일을 대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부와 언론이 서로 자숙하는 것은 국가의 안태와 국민의 복리를 위해서 다같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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