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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 산불방재 시스템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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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원도 양양.고성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피해는 너무나 컸다. 450ha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한 데다 1300여 년의 고찰 낙산사가 폐허가 되고 수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초속 25m가 넘는 강풍 속의 산불이었지만 초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안일한 자세와 진화장비 부족 때문에 피해를 키운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자체와 정부가 산불 초기 단계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가 긴급 대책회의를 연 것은 양양에서 산불이 발생한 지 20시간 뒤였다. 조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해 공무원과 군병력을 동원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피해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거듭 강조하지만 국가 차원의 일사불란한 방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양양 산불이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확산되지 않고 불길이 잡힌 것은 바람이 잠잠해진 사이 진화작업에 헬기가 대거 투입됐기 때문이다. 산림청 보유 헬기는 초대형 2대, 대형 26대, 중형 12대 등 41대다. 초속 15m 이상의 강풍에도 운항이 가능한 헬기는 초대형인 점을 감안하면 바람이 강했던 산불 초기엔 헬기 상당수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초대형 헬기를 충분하게 도입.확보해 1970년대 이후 집중적인 녹화사업으로 제법 울창해진 산림을 보호해야 한다. 예산상 부담이 되고 보유가 비효율적이라면 산불이 잦은 기간에 외국으로부터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산불 상습지역인 동해안은 지난 10여 년 동안 2만8572ha가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대형 산불 방지를 위해서는 장비 확충 외에 다각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소방차와 소방인력이 산불 발화장소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고 산불 차단 역할을 하는 임도(林道)를 보다 많이 닦아야 한다. 산불 피해지역 복구시 송진 등 인화성이 강한 침엽수보다는 불에 강한 활엽수를 혼합 식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산불 발생 원인 규명도 중요하다. 방화인지, 주민이나 성묘객의 실화인지를 밝혀내야 예방책을 수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