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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구단제·지역연고 없이 바둑리그 꽃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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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꽃피는 봄에 시작되는 2014 KB한국바둑리그가 물 밑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가 바둑리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좋은 소식이다. 화성시는 11일 한국기원과 조인식을 갖고 감독으로 지역 출신인 이정우 8단을 내정했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신안군(2009~2013년), 충북(2010년)에 이어 세 번째다. 충북이나 신안군은 지역 기업과 연대해 팀명을 ‘충북&건국우유’와 ‘신안태평천일염’으로 정했는데 화성시는 어떤 기업과 손을 잡을지 궁금하다.

아마 5단 실력의 채인석 화성시장은 “54만 화성 시민이 건전한 스포츠 문화를 향유하게 하고 중국에 밀리는 한국 바둑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 팀 창단을 결심했다”고 말해 조훈현 9단 등 조인식에 참여한 바둑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경기도 화성시가 바둑팀을 창단해 2014 KB한국바둑리그에 참여한다. 한국기원과 화성시가 11일 조인식을 가진 뒤 조훈현 9단(왼쪽)이 채인석 화성시장에게 친필 사인 바둑판을 전하고 있다. [사진 한국기원]

 그러나 바둑리그의 난제들이 화성시 참여라는 산뜻한 소식 하나로 다 해결될 수는 없다. 한국리그의 문제를 보기 위해서 먼저 중국리그를 보자. 1999년 시작된 중국리그는 축구처럼 팀에 선수선발의 전권을 주고 선수의 능력에 따라 연봉을 주는 ‘구단제’와 넓은 땅덩어리를 배경으로 한 강력한 ‘지역연고’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갑조리그(1부) 12팀, 을조리그(2부) 16팀, 병조리그(3부) 24팀 등 모두 52팀이 승강급제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바둑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한몫하고 있고 이세돌·박정환 등 한국 용병들을 특별 대우하는 개방적인 운영도 재미를 높여줬다.

 2003년 시작된 한국리그는 젊은 프로기사들이 가장 뛰고 싶어하는 무대가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초창기부터 짊어지고 온 문제들을 아직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드래프트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는 선수선발인데 이 바람에 팀의 얼굴이 매번 바뀌어 선수들이나 팬들이 소속감을 갖기 힘들게 되어 있다.

예선전도 골치다. 팀이 뽑기 싫은 선수라도 예선전을 통과했기에 뽑아야 되는 현실이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외국 용병은 언감생심이고 구단제도 요원하다. 바둑리그가 살 길은 구단제와 강력한 지역연고 외엔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예선 폐지라는 첫발조차 쉽게 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존의 몇몇 팀이 리그 참가 여부를 놓고 장고 중이란 소식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국기원은 바둑리그의 속기(40초 초읽기 5회)가 한국바둑을 약화시켰다는 일부 팬의 비난 때문에 올해는 1시간짜리 장고바둑을 늘릴 계획이다. 한국이 중국에 크게 밀리면서 ‘속기’가 마녀사냥을 당하는 분위기지만 사실 속기가 팬 서비스에 기여한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속기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일 뿐 그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2년 전 조치훈 9단이 일본 신예들과 팀을 꾸려 중국 을조리그에 참가한 적이 있다. 결과는 16팀 중 16위. 2부리그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다. 일본바둑은 한국과 중국에 밀리자 갖은 핑계를 대며 경쟁을 포기하고 자기들끼리 따로 놀았다. 그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게 됐다. 한국은 일본을 따라갈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문을 활짝 열고 중국과 맞서야 한다. 바둑리그의 경우 예선폐지는 물론이고 외국 용병까지도 과감히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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