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학이 번지는 세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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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상에 원한이라고는 사 본적이 없고, 악과는 아무 인연도 없을 어린이 4명이 성인의 범죄에 인해 무참히도 숨져갔다. 4일 화곡동 30만 단지에서 일어났던 세살·두살·한살 짜리 세 어린이의 참변을 볼 때 인간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무너지는 느낌이다. 특히 14살 난 가정부를 망치로 19군데나 난타해서 살해한 것은 인간의 선 성설 조차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범인은 이 집에 자주 출입하던 25세의 보일러공으로서, 범행 동기는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중인 내연의 처에게 면사포를 씌워주기 위한 돈을 마련키 위한 것이었다니, 어이가 없다. 실로 가치전도의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으며 아무리 돈에 탐이 났다하더라도 철없는 어린이까지 무차별로 살해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아닌게아니라 요즘 세태는 이 범인이 아니더라도 자칫 인명을 파리목숨처럼 여기고 서로 죽고 죽이고 있는 사실을 자주 목도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어린이 역살 뺑소니 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을 뿐 아니라 애인을 자살의 반려로 택한 사람도 있고 가족을 자살의 반려로 삼은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인간의 존엄이 마구 짓밟히고 있는 세태의 반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로동 강도범 이종대 일당이 끔찍이도 아끼던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한 것은 자식들에게 부모의 욕을 물려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유서에 쓰여져 있었으나 이것이 천인공노할 만행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사실이지,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사소한 일로 차마 목불인견의 잔인한 일들이 예사처럼 저질러지고 있는 것을 너무도 자주 목도하게 된다.
민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 생명의 존 귀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또 잔혹한 범죄영화가 극장가를 누비고 있을 뿐 아니라 안방에서까지 TV를 통해 범죄와 전쟁영화를 매일처럼 볼 수 있는 환경이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었다는 것일까.
학교교육과 사회 교육에서조차 공리만을 가르치고 정과 의, 인정과 사리를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에 잔혹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병과 의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불안과 긴장의 연속이 가혹범죄를 유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사회는 지금 철없는 어린이들의 생명마저 위험을 느껴야 할만큼 위기적 상황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 이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의심을 앙양하고 원수를 사랑할 줄 아는 종교원리를 터득케 하며 권력이나 물질의 추구나 색에의 탐닉이 헛된 부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 과욕을 견제하고 인간의 심성을 순화하는 교육이 절실한 요청이 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사회는 자체의 방범능력을 길러야 하겠다. 변두리에 있는 주택가에서 강도 살인사건이나, 강도·강간사건 등 강력 범죄가 접종하고 있는데도 경찰의 순찰은 기대할 수 없고, 기껏해야 자체적인 방범대에나 기대고 있는 현실은 한심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경찰의 순찰이 뜸하여지고 방범대원조차도 야간경비만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대낮을 이용한 강도·살인사건이 접종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예방경찰의 실을 다하기 위하여서도 주간순찰 경비와 야간순찰 경비에 만전을 다하여야 할 것이요, 강도나 살인범 등 강력범들을 기필코 체포하여 재범이나 3범을 막아야 한다.
철없는 어린이들이 집안 밖에서 마음놓고 뛰놀 수 없는 세태를 두고서는 정의나 인도주의란 한낱 허 명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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