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외교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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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구·주변국에서 외교적 승인>
제1단계 요람기 (49년∼50년)
이 기간동안 중공은 대외적으로 문호를 개방, 소련 등 동구 공산 국은 물론 영국「네덜란드」「덴마크」「스위스」「스웨덴」「핀란드」등 서구 여러 나라들 그리고「버마」인도 「인도네시아」「파키스탄」등「아시아」 주변국들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받았다.

<한국전 개입으로 고립을 자초>
제2단계 고립기 (50년∼53년)
중공은「맥아더」장군 휘하의「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한데 위협을 느껴 50년 10월16일 한국전에 개입했으며 그 결과 서방세계로부터 외교적인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다.

<제3세계의 새 주역으로 등장>
제3단계 노진기 (53년∼58년)
주은래는 54년 6월28일「네루」인도수상과 역사적인『평화공존5개항 원칙』선언에 서명했고 다음해「반둥」에서 열린 비동맹회의에서 주은래는「네루」를 제치고 제3세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했다.

<대 소-인 분쟁 유발로 긴장 고조>
제4단계 중-소 대립 기 (58년∼66년)
1958년의 대약진 운동 때부터 문화 혁명까지 이 기간은 미-중공 대결. 중 인 전쟁 및 중-소 분쟁 등으로 특징을 이루고 있다.
1960년 7월 중공에 파견됐던 소련기술자들이 허다한 공업계획들을 미완성 인 채 버려 두고 징수, 양국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문화혁명 발발로 각국 대사 소환>
제5단계 대내적 격동기 (66년∼69년)
문화혁명이 중공전역을 휩쓴 것과 때를 같이해서 중공외교는 제5단계에 돌입했다.
이를 계기로 중공은 대내 전선에 몰두, 세계 각국에 나가있는 대사들을 소환했다.

<문호 활짝…닉슨-다나까 등 방문>
제6단계 대 서방 문호 개방 기 (69년)
71년 중공의「유엔」가입이 실현되었고 이어 l972년 2월에「닉슨」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공 방문이 있었다.
「다나까」일본 수상의 중공 방문으로 일-중공 국교 정상화가 이룩되었으며 1973년에는 「조르지·퐁피두」「프랑스」대통령이「유럽」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중공을 방문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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