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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유리창 청소하나" 설움 날린 빙판 우생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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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왼쪽부터 신미성, 이슬비, 김은지, 김지선, 엄민지.

한국 여자 컬링이 일본을 꺾고 올림픽 데뷔전에서 승리했다. 한국은 11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큐브 컬링센터에서 열린 소치 겨울올림픽 컬링 여자부 예선 1차전에서 일본을 12-7로 눌렀다. 소치 올림픽 국가대표는 경기도청 팀이다. 저변이 얇아 단일팀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출전 10개국 중 가장 랭킹이 낮은 한국(10위)은 9위 일본을 꺾고 ‘빙판의 기적’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투혼을 발휘해 은메달을 땄다. 핸드볼 대표팀 이야기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란 영화로 제작돼 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빙판의 우생순 신화’에 도전하는 이들이 여자 컬링 대표팀이다.

 한국은 컬링 불모지였다. 1962년 대한뉴스는 외국 선수들의 컬링 경기 장면을 보도하며 “열심히 비질하는 이들, 그들이 가정에서도 저렇게 깨끗이 집안을 치울까요”라고 했다. 한국은 94년에야 대한컬링연맹을 창설했고, 2002년 여자 대표팀이 미국 비스마르크 선수권에서 9전9패로 최하위(10위)를 기록했다.

 중학교 교감 출신 정영섭(57) 당시 경기도청 감독(현 대표팀 감독)은 2009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전국 각지를 돌며 선수들을 찾아 다녔다. 99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컬링 중계를 보고 대학 컬링 동아리에 가입한 1세대 선수 신미성(36), 고등학교 컬링부 해체 후 유치원 보조교사를 하던 이슬비(26),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재활하다 컬링으로 전향한 김은지(25), 중국 유학 중 눈칫밥을 먹어가며 컬링 끈을 놓지 않았던 김지선(25),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컬링을 해온 엄민지(23)를 설득 끝에 불러 모았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 그녀들에게 가장 힘든 적이었다. 메달 유망 종목이 아니었던 컬링은 태릉선수촌이 아닌 인근 분식집과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외국 선수가 쓰다 버린 일회용 브러시 패드를 주워 빨아서 재활용했다. 브러시를 보고 "유리창 청소하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올림픽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렸다.

 3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가족 같은 팀워크로 2012년 3월 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4강 신화를 썼다. 하지만 쏟아지는 스케줄로 인한 연습 부족은 독이 됐고, 결국 다른 팀에 태극마크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 후 하루 9시간씩 빙판에서 살다시피 한 끝에 2013년 국가대표 자리를 탈환했다. 세계컬링연맹 국가별 올림픽 출전 점수 8위로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고 , 아시아·태평양대회 우승, 겨울유니버시아드 은메달을 따며 승승장구했다. 한국은 대회 참가 10개국 중 도박사들이 매긴 우승 확률이 가장 낮다. 그렇지만 풀리그에서 6승3패를 거두면 4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박린·김경희 기자

한국 여자 컬링, 일본 꺾고 올림픽 첫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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