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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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농어촌의 초가지붕 개량에서부터 도시의 벽돌「블륵」주택의 양산 (量産)
「새마을 운동에 곁들여 농촌주택의 전통양식인 초가지붕은「슬레이트」지붕으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도시에선 인구집중에 따른 주택난으로 평균 15평크기의 벽돌「블륵」조가 무더기로 세워지고「시멘트」움막으로 혹평받는 서민「아파트」군이 곳곳에 등장했다.
수출과 차관경기로 졸부가 된 일부 부유층은 건평 1백평 이상에「에스컬레이터」까지 시설한 저택과「맨션·아파트」를 지어 호화주택의 시비를 빚기도했다.
농어촌의 초가는 60년대와 70년대 초반을 거치는 동안 80%이상이「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어 정책 당국의 근대화 PR에 감초가됐다.
그러나 초가지붕과 흙벽은 방열재와 2중벽의 효과를 겸하고 있어 난방시설의 개량없이 이를 서둘러 헐어버려 농어촌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악화 시켰다는 말도 나왔다.
특히 서울시가 고지대 판자촌 주민들의 주택난을 해결한다고 지은 가구당 7평짜리 시민 「아파트」는 핵가족의 최소단위 구성인원(3명)이『인성(인성)의 침해를 받지않고 적용할 수 있는 최소 면적』조차 보강되지 않는 것.
이 때문에 주택의 기능을 외면한 겉치례 전시주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도시「슬럼」의 우려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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