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설원의 박태환' 꿈을 향해 날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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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가 11일(한국시간)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에서 공중 묘기를 펼치고 있다. 최재우는 12위에 올랐다. [소치 USA투데이=뉴시스]

스무 살 젊은 개척자가 설상 반란을 꿈꿨다. 그 문턱을 넘기 직전에 아쉽게 실격을 당했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기약했다.

 모굴스키 대표 최재우(20·한국체대)의 도전이 성공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 최재우는 1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로사 쿠토르 익스트림 파크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에서 상위 12명이 겨루는 결선 2라운드까지 진출했다. 이 라운드를 넘었다면 상위 6명끼리 치르는 결선 최종 라운드에 올라 메달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에어(공중묘기) 동작인 백 더블 풀(뒤로 돌면서 720도 회전) 연기를 마치고 모굴 코스를 서둘러 내려오다 스텝이 어긋나 코스를 이탈했다. 결국 실격 판정을 받았다. 실격한 뒤 진한 아쉬움에 최재우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워낙 공중회전 동작 기술이 좋아 결선 2라운드에서의 실수는 뼈아팠다. 최재우는 지난해 여름 ‘도마의 신’ 앙학선(한국체대)에게 점프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최재우는 “모굴스키와 체조의 공중 동작은 유사한 게 많다. 어떻게 해야 공중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일지 많이 배웠다”고 했다. 만약 최재우가 결선 최종 라운드에 올랐다면 모굴스키 최고 난도 점프인 콕 1080(공중 1080도 회전) 기술을 시도하려 했다. 양학선에게 배운 노하우와 실전 코스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큰 일을 낼 뻔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코스 이탈이라는 덫에 걸렸다.

 그래도 최재우는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최고 성적인 12위에 올라 가능성을 확인했다. 첫 올림픽 출전에도 주눅들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기죽지 않는 자신감으로 세계 톱 수준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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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우는 한국 모굴스키의 개척자다. 네 살 때 스키를 처음 탄 최재우는 여덟 살 때 접한 모굴스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캐나다로 4년 동안 혼자 스키 유학을 갔다 왔다. 캐나다 휘슬러중학교에 입학해 월드컵 모굴 3위 출신인 마크 맥도넬 코치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 워낙 기술 습득이 빠르고 기량이 날로 좋아져 캐나다의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힘들고 거친 길을 택했다. 최재우는 “모굴을 할 때부터 올림픽에 대한 꿈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설상 종목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돼서 한국 스키가 얼마나 잘하는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스키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올랐 다.

 최재우는 모굴스키의 박태환이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올림픽 전 목표로 “수영에 박태환 형이 있듯이 모굴에는 최재우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쉬운 실격 탓에 올림픽 시상대에 오를 기회는 4년 뒤 평창 대회로 미뤘다. 그래도 최재우는 훌훌 털었다. 그는 경기 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중했던 경험이었고 얻은 것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때까지 더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가 닮고 싶어 했던 박태환도 첫 올림픽이었던 2004 아테네 올림픽 수영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실격을 당했고, 4년 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소치=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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