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구 속 외무부의 밤과 낮|친서 문안 절충 싼 한·일 교섭의 기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교섭은 지난 12일부터 날마다 어떤 결판이 날 듯한 긴박감이 감돌며 초긴장 상태의 연속.
『오늘 중 일본측에서 만족할만한 친서 내용을 내놓지 않으면 중대한 대일 외교 조치가 발표될 것』이라고 못 박은 13일도 관계자들의 함구로 초조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
교섭 실무자급인 신정섭 아주 국장이나 김정태 차관보는 『장·차관이 하는 일인데…우리는 알아도 말할 수 없는 처지』라고 입을 다물었고 김동조 장관이나 노신영 차관은 「노·코멘트」, 『기다려 봅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13일 아침 일본측의 최종안을 가져온 「우시로꾸」 대사는 김 장관으로부터 『우리 요구가 친서 속에 안 들어가면 타결의 여지가 없다』는 거부 통고를 받고 『그럼 다시 본국 정부에 연락, 훈령을 청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그럼 회답을 하오 3, 4시까지는 해달라』고 말하고 곧장 총리실에 들러 청와대로 올라갔다.
김 장관의 표정은 마지막 기대가 어긋난 듯한 것이었으며 노 차관도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 사이 「우시로꾸」 대사는 본국 정부의 훈령을 기다리며 대사관을 지키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김 총리가 오늘 저녁 대일 비상 조치를 발표한다』는 서울 발 석간 보도가 대서 특필됐다는 소식이 계속 들어왔다.
하오 4시30분 「마에다」 공사가 김정태 차관보에게 『동경에서 전보를 보내겠다는 통보가 왔다』는 전화 연락을 한 뒤 외무부로 찾아와 신 아주 국장에게 다시 『동경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고 알려왔다.
김 장관은 하오 3시부터 열린 국무회의에도 노 차관을 대신 보내고 1시간 가량 혼자 있었다.
일단 5시로 잡아놓았던 시한을 넘기자 김 장관은 자신이 초청한 「갬비아」 외상을 맞기 위해 하오 5시50분 공항으로 가면서 비서들에게 「우시로꾸」 대사의 연락이 올 터인데 다시 사무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하오 7시10분 공항에서 귀청 하면서 김 장관은 승용차 안의 「카폰」을 통해 『아직도 연락이 없느냐』고 재확인.
7시40분이 돼도 연락이 없자 김 장관은 공관으로 가서 회답을 기다려야겠다면서 지금까지 보도진을 따돌리는 태도와는 달리 『다같이 갑시다. 「우시로꾸」 대사가 공관으로 올지 모르니…』 하며 선심 (?)을 썼다.
식사 도중 고위층으로부터 『어떻게 되어 가느냐』는 전화를 받고 노 차관에게 『아직 연락 없느냐』고 또다시 확인전화.
노 차관은 7시 「우시로꾸」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됐느냐』고 회답을 재촉, 『지금 동경에서 전문이 들어오고 있으나 상관 없는 내용이다.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9시20분쯤 노 차관과 김 차관보가 공관에 오자 김 장관은 곧 일본측의 회답을 기다리며 대책을 숙의. 「우시로꾸」 대사가 「마에다」 공사와 함께 대사관에서 본국 훈령을 받기 위해 밤 9시30분까지 기다리다가 끝내 회답을 받지 못하고 공관에 돌아갔다는 소식과 함께 일본 기자들로부터 『일본측이 한국에 더 기다려 달라고 한 바 없다고 한다』는 얘기가 들려 보도진의 상황 판단에 혼선을 자아내기도.
밤 11시30분쯤 김 장관과 노 차관은 기자들에게 와서 『오늘은 회답이 없는 것 같다.
오늘밤에 오더라도 내일 만나자고 할 테니 집에 돌아가라』고 귀가를 권유했다.
한편 이날 중앙청과 외무부는 정부의「중대 발표설」로 긴장.
「중대 발표설」의 진원은 이날 상오 김 외무가 「우시로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조총련 규제를 친서 속에 명기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일본측 회답이 불만족스럴 경우엔 한국은 비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 내용은 김 총리가 「텔리비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를 「우시로꾸」 대사가 일본 기자들에게 흘림으로써 나온 듯.
그러나 정인량 총리 공보 비서관은 『아직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서 「텔리비젼」 방송을 할 실무 준비가 안되어 있음을 비쳤고 김 외무는 『우리 쪽은 내일 「우시로꾸」 대사를 만나 본 뒤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다소 여유 있는 말을 기자들에게 했다.
「중대 발표설」은 김영선 주일 대사의 소환과 관련되는 외교 조치로 해석되었으나 밤 12시가 지나도 조용해 「발표」는 끝내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