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 친서」 오늘 중 결판|김 외무, "파국 선언할 성명은 없을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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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동조 외무장관과 「우시로꾸」주한 일본 대사는 11일 밤 2차례 회담에 이어 12일 아침에도 1시간에 걸친 회담을 갖고 8·15 저격 사건의 뒤처리 방안을 협의했다. 김 장관은 12일 중 다시 「우시로꾸」 대사를 만나 최종적인 매듭을 지을 예정이나, 일본측 친서에 담을 조총련 규제 문제 표현에 대해 끝내 난항을 겪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상오 청와대를 다녀나 온 뒤 총리실에서 김종필 총리와 2시간여 동안 대일 교섭에 있어서의 최종적인 우리 정부 입장과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당초 조총련 규제를 명기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측은 『한국 전복을 꾀하는 「테러」 행위 등을 강력히 단속한다』는 일반론적인 표현을 쓰려했다.
「조총련의 명기」에서 후퇴하지 않은 정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일본측은 한국 측 견해를 충분히 반영할 것이라고 했으나 그 표현은 『반 한국적 파괴 행위를 강력히 단속한다』는 선에 머물러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 외무-「우시로꾸」 대사는 각기 정부 고위층의 훈령에 따라 12일 중 2차 접촉을 갖는다.
일본측의 태도는 막바지에서 얼마간 경화된 느낌이라고 소식통이 전했으며 더우기 『한국에서의 반일 운동이 숙어지지 않는 한 일본 특사의 파한이 어려울 것』이라고 일본의 일부신문들이 보도함으로써 최종적 타결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한편 외무부 관계자는 조총련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지칭은 구두로라도 좋으나 최소한 반한적 「범죄 집단」을 규제하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밤 9시30분부터 20분 동안, 11시40분부터 12일 영시 10분까지, 12일 아침 7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한남동 외무장관 공관에서 이루어진 김 외무-「우시로꾸」 대사 요담에서 한·일 양국은 「다나까」 수상 친서에 ①일본은 8·15 사건에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②저격범 문세광의 자백을 참고로 일본 안의 공범 및 배후 수사에 최대한 협력한다 ③8·15 사건과 같은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본은 노력한다는 내용을 넣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이날 아침 『파국을 선언하는 성명서 발표는 없을 것』이라며 『12일 중 결말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김동조 외무장관-「우시로꾸」 주한 일본 대사의 두 차례 심야 회담이 이루어진 11일 김 장관은 장관실에서 7시10분쯤 모처에서 영어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10분간 통화. 이 통화 시간은 「우시로꾸」 대사가 본국 정부로부터 「다나까」 친서 최종 조정안에 대한 훈령을 받은 것과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김 장관이 서대문 S양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동안 외무부에 남아 있던 노신영 차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저녁 9시 음식점을 나선 김 장관은 수행 비서도 떨어뜨리고 차에 올라 한남동 공관으로 직행.
「우시로꾸」 대사도 김 외무가 S양식점을 떠난 시간과 맞춰 일본 대사관을 출발.
초소 경비원들과 시비 끝에 공관 안에 들어선 보도진을 밖으로 유도하기 위해 김 장관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소등하는가 하면 L실장 차와 장관 차가 공관 밖으로 달려나가는 위장 전술도 폈다. 9시30분부터 공관 문을 걸어 잠근 채 시작된 김 외무-「우시로꾸」 대사의 비밀회담은 20분간 계속되어 9시50분 김 장관과 「우시로꾸」 대사가 나란히 자동차를 타고 공관 문을 나섰다.
김 외무는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갔다가 다시 청와대로 향했으며 「우시로꾸」 대사는 일본 대사관에 도착 즉시 본국에 보고한 후 10시40분부터 일본 기자들과 회견. 두번째의 회담은 11시30분 장관 공관에 다시 돌아온 「우시로꾸」 대사가 10분 늦게 도착한 김 외무를 기다려 11시40분부터 계속됐다.
2차 심야 회담에는 노신영 차관도 배석. 30분의 회담이 끝난 다음 「우시로꾸」 대사 차만이 경찰 호위 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관 정문을 나섰다.
김 장관과 노 차관은 「우시로꾸」 대사가 떠난뒤 30분 동안 요담했다. 12일 아침의 회담은 「우시로꾸」 대사가 상오 7시30분 장관 공관으로 찾아와 1시간 동안 계속됐다.

<동경>
대일 현지 교섭을 벌여온 주일 한국 대사관은 11일 서울 쪽의 김동조·「우시로꾸」 절충을 주시하며 동경에서의 정계·외무성 「라인」 절충 결과를 검토.
이병희 무임소장관과 함께 막후 교섭을 맡아온 최영철 의원이 1박2일로 서울에 다녀와 11일 한국 측의 강경한 자세를 전하자 일본 외무성은 물론, 그 동안 자민당 및 수상 측근과 접촉해온 이 장관과 김영선 대사의 표정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드디어 11일 하오 7시께는 대사 철수설이 나돌 정도로 긴박한 분위기. 이 장관은 7시 조금 지나 서울의 김종필 총리와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 연락을 취했는데 『힘이 듭니다』라고 현지의 고충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문밖에까지 새어나오기도.
.일본측은 총리부 사람들이 직접 나서 일본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정부의 진의가 어디 있는지를 타진하기 위한 의견을 물어오기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정말 「단교」라는 국면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있느냐에 50대 50정도로 반신반의해 왔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한국 정부의 굳은 결의가 실감 있게 인식되어 일본 정부의 자세를 누그러뜨리게 된 듯.
이 같은 한·일 교섭의 추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 사람들은 상당히 불만스런 표정. 어떤 실무자는 『특사 파견으로 일본이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마이너스」가 안되는 것이 얻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퉁명스레 내뱉었다.
【동경=박동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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