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의 음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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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근착「뉴스위크」지는 『기업·금융』난에 나란히 두개의 사진을 배열하고 있다. 하나는 1930년대 미국실업자군의 광경, 또 다른 하나는 요즘 「윌·스트리트」에서 국적을 사려고 늘어선 군중들. 그 설명문이 자못 눈길을 끈다. 『1930년대의 음영』-.
1930년대라면 세기적인 경제공황을 생각할 수 있다. 그 당시 대표적인 공업국가이던 영국을 비롯한 자본주의국가들의 공업생산은 1908년 수준으로까지 떨어졌었다. 이 공황의 특징은 독점기업체들에 의한 고가격 유지와 생산제한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농업공황까지 겹쳤었다. 대은행에 의한 신용구제는 도리어 신용공황을 더욱 심화했다. 또 본위화폐의 감가와 내외채의 상환불능은 국제상업기구를 실질적으로 붕괴시켰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규모의 거래공황으로 시작되어 대량적인 농업파산과 생산재의 현저한 감소를 가져왔다. 독일은 외국단기신용의 강제적인 상환때문에 신용공황에 직면했다. 영국은 조선·선철생산의 저하와 함께 국제적인 신용교란으로 1931년에는 금본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1차대전중의 군수증가에 따른 설비과잉에도 한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설비의 갱신확장에 의한 새로운 대처를 가로막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성적인 실업이 국내소비수요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또 식민시장도 협소했다. 따라서 그때의 세계적인 불경기는 좀체로 호경기로의 기선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른바 미국의 「뉴·딜」정책, 영국의 「스털링」지역 확보, 독일의 경제에 대한 국가통제의 강화등은 대공황을 극복하는 노력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공황은 작은 기복들에도 불구하고 1937년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최근 세계의 금융시장이나 자본시장이 겪고있는 상황은 그 당시와 엇비슷한 조짐이 없지않다. 한 경제평론가는 『1929년이래 최초의 공황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우선 급격한 외환시세의 변동은 구미은행들에 격심한 결손을 입혔다. 미국 영국 서독의 1류 은행들도 경영위기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한편 세계증권시장의 동향을 표시하는 대표적 지수인 「다우·존즈」식 평균주가(Dow Jones average)는 이를데 없이 불안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사상최고인 1,501까지 치솟아 과열경기를 표현하던 이 지수는 1년8개월만인 지난8월말현재 679로 내려갔다. 「다우·즌즈」식 평균주가란 미「뉴요크」시의 「다우·존즈」회사에서 작성발표하는 주가평균으로 주문의 경향을 설명해준다.
결국 이런 공황의 우려들은 식량의 세계적인 기근현상, 주요자원난,그밖에「에너지」, 특히 유류파동등이 그 주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마치 혹한예보라도 받은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들게하는 상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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