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 수교의 선례|미·동독 관계 정상화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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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서간 「화해」의 산물인 미국의 동독승인은 미국과 북괴·월맹 등 공산 분단국과의 수교도 『일정한 조건아래서』는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 『일정한 조건』이라는 것은 미국과 상대방 분단국과의 관계개선 필요성에 좌우되겠지만 동·서독관계 정립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상황이 절대적 요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무성 관리가 미·동독 수교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 북괴와의 수교도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방향, 즉 미국이 바라는 남북한 관계정립의 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요즈음 미국과 북괴간의 막후교섭 설이 이따금 보도될 때마다 미국무성의 『미국과 북괴간의 관계정립은 남북간의 문제해결을 전제로 한다』는 논평도 이런 방향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동서독의 문제해결 방식은 기본적으로 양독 기본조약-대표부 교환-「유엔」 동시가입이라는 세가지단계로 나누어진다. 물론 이처럼 간단히 도식화되기는 하지만 양독관계에는 해소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따른다.
기본조약을 체결하기는 했으나 상이한 양측의 조약문 해석은 아직도 많은 말썽을 빚고있다.
우선 양독의 주권문제다. 서독은 『1민족국가의 2정권』이라는 입장에서 동독을 외국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언제고 통일의 가능성을 남겨두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동독은 완전한 별개의 주권국가임을 주장하며 독일민족에 대한 단일국가 성립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양독이 이처럼 기본적인 입장을 달리하면서도 조약체결·대표부교환·「유엔」 동시가입이라는 긴장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긴장완화 추세에 「브란트」라는 현실감각이 풍부한 정치가의 「오스트·폴리티크」에 힘입은바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독 국민사이에 종래부터 있어왔던 인적·물적 교류가 양독의 교섭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2차대전후 4대국 분할 이래로 끊이지 않았던 양독의 교역관계·서신교환 등이 동서독 기본조약 성립바탕이 되어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북괴수교 전제조건이 되는 남북한 교섭 역시 동서독의 예에 비추어 생각할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에서 남북한이 공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하냐가 그 시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어떤 형태든지 아직 관계를 트지 않고 있는 나라는 북괴·월맹·「쿠바」와 「알바니아」 및 몽고다.
몽고와는 수교가 실현단계에 다다랐고 「쿠바」와 「알바니아」의 경우는 그쪽에서 접근해오면 성의 있게 응한다는 의사표시를 자주하고 있다.
월맹의 경우는 「베트남」전쟁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상태라 시기상조지만 「키신저」가 월남 평화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터놓은 대화의 통로는 시기가 오면 미국·월맹의 관계개선은 하룻밤사이에도 가능하게 할 정도다.
지구상에서 유독 미국이 북괴하고만 관계를 갖지 않는 단계까지 오면 그때는 국무성이 느끼는 「수교」 압력들은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의회의 국무성에대한 압력, 의회자체의 움직임도 활발하여 질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워싱턴=김영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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