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서 겉도는 분쟁해결-한국·키프로스 사태의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근 발생한 「키프로스」위기의 폭발은 강대국들이 강구한 평화방안이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있으며 때로는 그러한 해결책이 문제를 해결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고있다.
이미 「키프로스」위기에 관한 또 다른 휴전협정이 해결되었으나 이 협정은 이 위기의 기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실패한 것 같으며 여기서 선진 강대국들의 외교는 만성적이고도 변화 없는 「키프로스」위기를 근본적인 측면에서 해결한다기보다 그때 그때의 상호간의 이해를 여과시킨 호도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새삼 드러나고 있다.
2차 대전후의 몇몇 분쟁 지역들을 대상으로 고찰 해 보면 분쟁을 해결하는데 있어 강대국들은 근본적인 치유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위기를 일시적으로 은폐하는 고약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근본적인 요인을 처리하지 않은 이러한 미봉책은 때때로 그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이도 보이며 현재 일시적으로 해결된 것 같이 보이는 지역까지도 돌발적이고도 격렬한 위기를 몰고 올 위험상태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냉전적인 사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어려운 순간을 외교적인 술책으로 지연시켜 보려는 이러한 미봉책의 외교전략이 싹튼 것이며 이같은 해결책은 한국·「키프로스」·월남·「팔레스타인」·인도아대륙·독일문제 등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는 때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생명과 재산의 낭비적인 희생증가에 공헌하는 경향조차 있었다.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던 한국은 강대국들이 서명한 43년의 「카이로」협정에 의해 독립이 약속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점령군의 보호아래 북한에 한 공고한 경찰국가를 수립했으며 남한은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같은 분단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50년 북괴는 남침했으며 미군은 「유엔」군 예하에 이를 저지하는 한편 중공도 이에 개입하게 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53년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그 성과는 거의 무에 가까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키프로스」에서는 현지 주민들의 폭동에 의해 압력을 받아 영국이 이 섬을 계속 식민지로 삼을 수 없게 되자 영국의 교관들은 한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강요된 타결 안은 「키프로스」의 「그리스」계 촌과 「터키」계 촌간의 깊고도 기본적인 분쟁을 해결하는데 실패했으며 이 때문에 64년과 67년에는 「그리스」계와 「터키」계는 전쟁일보전의 상태에까지 이르러 급기야 전쟁이 발발되고 말았다.
이같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휴전협정이 「그리스」와 「터키」간에 조인되었으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더우기「터키」 가「키프로스」에 대한 군사적인 우세를 고집한다면 이 협정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AP】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