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키프로스」위기의 폭발은 강대국들이 강구한 평화방안이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있으며 때로는 그러한 해결책이 문제를 해결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고있다.
이미 「키프로스」위기에 관한 또 다른 휴전협정이 해결되었으나 이 협정은 이 위기의 기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실패한 것 같으며 여기서 선진 강대국들의 외교는 만성적이고도 변화 없는 「키프로스」위기를 근본적인 측면에서 해결한다기보다 그때 그때의 상호간의 이해를 여과시킨 호도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새삼 드러나고 있다.
2차 대전후의 몇몇 분쟁 지역들을 대상으로 고찰 해 보면 분쟁을 해결하는데 있어 강대국들은 근본적인 치유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위기를 일시적으로 은폐하는 고약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근본적인 요인을 처리하지 않은 이러한 미봉책은 때때로 그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이도 보이며 현재 일시적으로 해결된 것 같이 보이는 지역까지도 돌발적이고도 격렬한 위기를 몰고 올 위험상태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냉전적인 사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어려운 순간을 외교적인 술책으로 지연시켜 보려는 이러한 미봉책의 외교전략이 싹튼 것이며 이같은 해결책은 한국·「키프로스」·월남·「팔레스타인」·인도아대륙·독일문제 등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는 때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생명과 재산의 낭비적인 희생증가에 공헌하는 경향조차 있었다.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던 한국은 강대국들이 서명한 43년의 「카이로」협정에 의해 독립이 약속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점령군의 보호아래 북한에 한 공고한 경찰국가를 수립했으며 남한은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같은 분단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50년 북괴는 남침했으며 미군은 「유엔」군 예하에 이를 저지하는 한편 중공도 이에 개입하게 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53년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그 성과는 거의 무에 가까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키프로스」에서는 현지 주민들의 폭동에 의해 압력을 받아 영국이 이 섬을 계속 식민지로 삼을 수 없게 되자 영국의 교관들은 한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강요된 타결 안은 「키프로스」의 「그리스」계 촌과 「터키」계 촌간의 깊고도 기본적인 분쟁을 해결하는데 실패했으며 이 때문에 64년과 67년에는 「그리스」계와 「터키」계는 전쟁일보전의 상태에까지 이르러 급기야 전쟁이 발발되고 말았다.
이같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휴전협정이 「그리스」와 「터키」간에 조인되었으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더우기「터키」 가「키프로스」에 대한 군사적인 우세를 고집한다면 이 협정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