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여간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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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여간’이 들어가는 말을 외국인이 능숙하게 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어 실력이 중급을 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 중에서도 잘못 쓰는 이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여간(如干)’은 ‘그 상태가 보통으로 보아 넘길 만한 것임’을 뜻하며 주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인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다 보내니 가족들 모이기가 여간 어렵다.”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여간 어렵다.” 위의 예문은 가족들 모이기가 매우 어렵고, 아이 키우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여간 어렵지 않다’로 해야 원래 의도한 표현이 된다. ‘여간’이 ‘보통으로’의 뜻이어서 ‘여간 어렵다’는 ‘보통으로 어렵다, 그리 어렵지 않다’란 의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음은 약간 다른 경우다. “며칠째 고심하고 있는데 남자 아이 이름 짓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니네요.” “개인의 음역은 한정돼 있다. 물론 노력으로 높일 수는 있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장들은 ‘여간’ 뒤에 부정의 의미를 쓴 것까지는 좋았지만 바로 뒤의 단어가 문맥에 맞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여간’을 ‘보통’으로 바꾸어보면 ‘보통 쉬운 게 아니네요’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가 되어 ‘매우 쉬운 일’의 뜻이 됨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네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로 써야 뜻이 통한다.

 ‘칠칠하다’도 부정의 의미를 지니는 낱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 단어는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란 매우 좋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뭔가 모자라는’ ‘시원치 않은’의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제가 워낙 칠칠한 성격이라 흰옷을 잘 안 사는데요” “상상으로는 병을 힘 있게 쥔 멋진 포즈를 취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자기 얼굴에 음료를 엎지르는 칠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의 경우 ‘칠칠하지 못한 성격’ ‘칠칠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해야 문맥에 맞는 표현이 된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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