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좌·우 공존의 「라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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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라오스」의 연정에 대한 호기심은 「비엔티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져버렸다. 보이는 것이 너무도 실감나는 아연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공항은 완연히 복장이 다른 두 군대가 경비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원사절단을 복장과 무장이 다른 경비병들이 혼성으로 경호했다.
몸에 잘 맞는 「카키」복에 미군식 모자를 쓰고 「카빈」을 멘 우파경찰. 헐렁한 국방색복장에 「레닌」모자를 쓰고 AK소총을 멘 공산 「파테트·라오」군인. 어느 쪽이 좌파고 어느 쪽이 우파인지 첫눈에 구별할 수 있었다.
공통점이라곤 왼팔에 두른 혼성 경찰완장뿐이다.
우리사절단은 좌·우파에서 각기 12명씩 24명의 경호를 받았다. 숙소·승용차· 요인방문 등 모든 움직임을 공동으로 경호했다.
대표들이 탄 승용차에는 좌·우파 두명의 경비병이 꼭 동승했다.
「파테트·라오」경비병과는 처음엔 서로 꺼림칙했지만 곧 친숙해져 떠나는 날엔 기념촬영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
좌·우파경찰이 혼성근무를 하는 것은 비단 정부청사·국빈경비뿐이 아니다. 교통정리·길 통제·범법자 취체까지도 공동으로 한다.
이러한 좌·우 혼성경찰은 좌·우파 연정수립의 전제가 된 수도「비엔티앤」과 왕도「루앙프라방」의 중립화 합의에 따른 것이다. 「비엔티앤」에는 좌·우파 각기 1개 대대씩의 병력과 5백명씩 도합 1천명으로 된 혼성경찰이 주둔하며 「루앙프라방」에는 2개 중대씩의 병력과 각기 2백 50명씩 5백명의 혼성경찰이 주둔한다.
혼성경찰은 공동근무를 하지만 기타 주둔군은 각기 자파의 지휘를 받는 중립감시군인 셈이다. 이 두 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휴전당시의 세력권에 따라 양분되어있다.
지난 3월 15일 두 도시의 중립화가 이루어진데 이어 4월 5일 좌·우파 동수로 연립내각과 민족정치자문회의가 발족했다.
연립내각은 「푸마」수상을 제외한 12석의 각료와 같은 수의 차관을 좌·우파가 6석씩 나누고 각부의 장·차관은 또 상호 다른 파에서, 맡는 쌍방교호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미 두 번에 걸친 연정을 경험했던 터라 좌·우파 각료들은 어느 면에선 서로 얘기가 통하는 처지다.
우리 사절단을 위한 상공회의소주최 오찬회에는 우파의 「곤·사나니코네」재무장과 좌파의 「페트라시」경제기획상 및 「시코추나말리」공공사업상이 참석했다. 「곤」재무상과 「페트라시」경제기획상은 노선은 다르지만 죽마지우. 같이 공부하던 얘기, 젊은 시절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던 일, 2차 연정이 무너진 후 「페트라시」가 「파테트· 라오」대표단과 「비엔티앤」에서 버티던 일, 좌·우 합작교섭으로 입씨름하던 일 등을 화제로 올려 얘기꽃을 피웠다.
아직은 좌·우파가 상호 군대나 내각에서 충돌한 적이 없다.
연립정부의 수립과 유지는 전적으로 「푸마」수상의 지도력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라오스」의 우파는 현재와 같은 식의 연정수립에 반대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은 연정에 대한 회의를 버리지 못한다.
우파는 이미 두 차례 실패한 연정의 성공을 의심하고 특히 두 도시의 중립화를 구실로 「파테트·라오」군이 진주한 것은 굴종이며 공산군에 의한 「쿠데타」가능성을 주었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푸마」수상은 이미 「라오스」국토의 80%를 점령한 「파테트·라오스」가 별도 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민족단합의 길을 남겨두었다는 점을 들어 연정을 강행했던 것이다.
연립정부는 월맹군 철수문제, 「베트콩」승인문제, 인지 민족해방투쟁지지문제 등 좌·우파가 충돌할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현재까지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땐 결정을 보류하거나 「푸마」수상이 단안을 내렸다.
왕자인 「푸마」수상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어서 좌파의 각료도 그 앞에선 자기주장을 강력히 내세우지 못한다고 한다
「푸마」공의 국민적인 인기 또한 대단하다.
「푸마」공이 건재하는 한 「라오스」의 대연정은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정이 궤도에 오르기 전 연로한 「푸마」의 지도력이 사라지면 「라오스」연립정부의 앞날은 예측하기 힘들다. 지금 「푸마」수상의 와병은 「라오스」의 앞날에 먹구름을 예고하는 것이다.
더욱이 「푸마」수상의 유고시에는 「파테트·라오」의 「푸미·봉비치트」부수상겸 외상이 직무를 대행하게 되어있다. 「파테트·라오」지도자 「수파누봉」공의 인기까지 감안하면 「라오스」중립의 앞날은 어둡다.
「라오스」는 며칠 전 끈질긴 좌파의 요구로 연정수립 후 기능이 동결됐던 의회를 해산했다. 조만간 현재의 과도정부를 대체할 총선거를 실시해야한다. 우파의 「곤」재무상은 현재의 상황에서 총선거를 할 경우 승산을 점치기 힘든다고 실토했다. 연정자체에 대한 우파의 걱정과 상의도 이해할만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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