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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주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소비자를 골탕먹이는 엉터리 상품이 유명「메이커」들의 제품가운데서도 적지 않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12일 공업진흥청은 그 동안 실시해 온 주요공산품들의 실량 기준 및 품질표시 이행사항 조사결과를 발표, 과자류·유제품·식유·주류를 만드는 46개 업종 중 8개 업체 11개 종류의 상품이 실량 기준에 미달되고, 의류·전기기구·「프로판·개스」등 1백9개 주요공산품「메이커」중 약60%에 해당하는 63개 업체가 품질표시를 제대로 이행치 않고 있다고 지적, 1차적으로 경고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공업진흥원의 이같은 조사결과는 그 동안 주부「클럽」등 여러 소비자단체와 일부 시민들이 벌여 온 열띤「캠페인」의 대상이 되던 조악·불량상품의 범람사태를 주무관청이 비로소 확인하고, 일부 유명「메이커」의 제품가운데도 규격미달이 있음을 경고했다는데 뜻이 있을 뿐, 사태를 본질적으로 시정할 만한 하등의 적극적 조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에선 흔히「소비자주권」이라는 말이 유행되기도 하는 모양이나, 막상 소비자들에게 있어서는 이같은 주권의 행사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있어서는 수많은 제품을「체크」할 만한 기술이나 정보가 사실상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각국은 모든 상품의 품질을 보장하고, 깍듯이 정량을 지켜 소비자의 주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모든 부정·불량상품에 대한 제재조치를 가장 무거운 형벌로써 임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업진흥청이 이번에 취한 일부 규격미달 상품과 불량업소에 대한 경고조치는 이런 뜻에서 일단 높이 평가 돼야 하겠지만, 이로써도 적발된 부정·불량상품 때문에 그 동안 소비자가 감수해야 했던 피해를 앞으로도 보상할 길이 없다는 점에서 좀더 적극적인 소비주권 보호대책이 아쉽다 하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는 소비자 스스로가 주권을 지키려는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외국의 경우에서처럼 일절의 불량·부정상품을 추방하여 철저히 소비자 주권을 보호하는 길은 시민의 왕성한 고발정신이 있음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봉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는 서민들로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산 물건의 가치에 대하여 스스로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항상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사회적 미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특히 강조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이른바 소비자보호운동을 마치 여성의 일로만 아는 사회풍토를 바꾸어 전국민이 일치해서 모든 불량·부정상품을 몰아내는데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밝혀진 사실 가운데서도 특히 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대부분 어린이들이 수요자가 되고 있는 과자류에 있어서 실량 미달과 품질 불량품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또는 그 어찌 할 수 없는 철부지들의 무저항성을 악용하여 조악한 식품을 만들고 이를 비싸게 팔아 부당이득을 올리려 했다면 이는 특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 할 수밖에 없다.
과자류의 경우는 상품의 품질이나 실량의 기만에 그치지 않고 알맹이보다 4배나 되는 허풍포장을 하여 물자의 낭비는 물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일종의 허탈감 같은 불건전한 심리현상을 맛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량을 속이거나 품질규격에 미달하는 제품을 만들어 부당이득을 추구하려는 생산업자나 중간상인의 농간으로부터 소비자 주권을 지키는 일은 소비자들의 각성만으로써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이번 공업진흥청 발표의 또 하나의 의의라 하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나마 믿어도 좋으리라는 심증을 주었던 유명「메이커」의 제품 가운데서도 그같은 불량·부정상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 및 유통의 모든 과정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불량·부정상품의 범람을 막고 소비자보호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상품의 보다 엄격한 규격제 실시와 함께 무거운 형벌을 수반하는 보다 실효성 있는 제품검사제가 하루빨리 실시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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