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엄마 죽인 강도 빨리 잡아 주셔요"|모정 잃은 어린 형제 애타는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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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엄마가 아무 죄없이 억울하게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아프고 괴로움에 몸부림치셨을까요. 재미있게 살던 우리가정은 슬픔의 구덩이에 떨어지고 아빠는 매일 술만 잡수십니다. 우리는 학교에 가서도 공부시간에 정신이 멍해지곤 합니다.』지난 6월21일 밤 서울 성동구 군자동56의5 길 가운데서 강도에 돌연 뒷머리를 둔기로 얻어맞고 숨진 최옥분씨(36·서울 용산구 한남동686의20)의 맏아들 민경호군(13·한남국교5년)이 7일 관할서인 서울동부경찰서장 정구창 총경에게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빨리 잡고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없게 해달라는 간절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민군의 어머니 최옥분씨가 뜻밖에 변을 당한 6월21일, 최씨는 친정인 성동구 군자동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국민학교 동창생 4명과 모처럼 부여에 놀러갔다가 친정에 들르던 길이었다. 장소는 친정 집에서 불과 30m밖에 떨어지지 않은 한길.
이날 최씨 등은 1주일 전에 전화로 연락, 동창생인 성동구 능동347의3 김금기씨(37·여)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최씨가 집을 나선 것은 상오7시. 경호(13) 장호군(11) 등 두 아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고『좋은 선물 사올테니 아빠 말 잘 듣고 놀아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편 민덕기씨(39·복덕방업)는 아내 최씨에게 비상금으로 쓰라며 1만원을 쥐어주었다.
일행 5명은 약속대로 김씨 집에 모여 9시30분쯤 어린이공원 앞에서 다른 관광객 45명과 전세낸 초원관광「버스」편으로 부여로 갔다. 최씨 등 5명은 박물관·고난사·낙화암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며 꼭 수학여행 온 어린이들의 기분에 젖어 한낮을 즐겼다.
배를 타고 백마강을 오르내리며 모두들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이 하오10시20분. 최씨는 집에『무사히 돌아왔다』는 전화를 하고 친구 김씨 집에서 3백50m쯤 떨어진 친정(군자동56의3) 에 들러 노환중인 어머니(김흥분·73)를 뵙고 이튿날 돌아가겠다고 남편 민씨에게 말했다.
밤늦게 친정 집으로 나선 최씨는 친정집 앞 30m를 앞둔 한길 복판에서 괴한에게 뒷머리를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귀가 중이던 박종화씨(37·성동구 자양동229) 에 의해 발견됐다.
최씨는 차고있던 2만원짜리 시계 1개와「핸드백」을 빼앗긴 채 실신, 인근 동부병원(원장 안순열)에 옮겨졌으나 곧 숨지고 말았다.
사고지점은 화양동에서 중곡동으로 빠지는 큰길에서 50m쯤 떨어진 곳. 지난 3월 구획정리사업으로 뚫다가 내버려진 곳으로 노면이 험하고 돌이 많으며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곳에서 동부서까지는 3㎞, 화양파출소까지 1.5㎞, 중곡파출소까지는 2㎞. 평소 불량배가 들끓는 치안사각지대.
최씨가 죽은 뒤 이들 세 식구에게 밥을 해주고 있는 민씨의 처조카 신현노양(19)은 이따금 잠꼬대에서「엄마」를 부르다 벌떡 일어나 멍하니 앉아있는 장호군을 보면 절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사건이 나자 화양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 용의자 70여명을 연행 조사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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