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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 알아보는 순간 세상도 우릴 알아본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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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신들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게 물려 아들들과 함께 죽는 예언자 라오콘. 스페인의 화가 엘 그레코의 작품(1610∼1614년).

정말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일까? 수평선에 보일까 말까 하던 수많은 점들. 점점 커진 점들은 탑같이 거대한 방패와 단단한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헬멧으로 무장한 아카이아(Akhaioi) 병사들로 가득 찬 배들이었다.
먼 훗날 그리스인들이 ‘빌리온’ ‘일리온’, 그리고 결국 ‘트로이’라고 부르게 되는 터키 서해안의 부유한 도시 ‘빌루사’. 스파르타 왕비를 납치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아카이아인들은 빌루사의 금과 여자와 노예를 노렸던 것이다. 10년이란 긴 시간의 전쟁.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모두가 고통 받는. 아킬레우스는 황태자 헥토르를 죽이고 겁쟁이 파리스 왕자가 쏜 화살은 신의 도움으로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에 꽂힌다. 파리스 역시 아카이아인 손에 죽는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집이 그립던 그리스인들은 결국 빌루사를 등지기로 결심한다, 침몰한 배를 건져 만든 웅장한 목마를 해변에 남겨두고 말이다. 트로이인들은 흥분에 빠진다. 지긋지긋하던 전쟁이 끝났다고. 이제야 인간같이 살 수 있다고. 드디어 그리워하던 여인과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야비한 아카이아인들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예언자 라오콘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저 목마가 트로이의 재앙이 될 거라고! 빨리 이 정보를 프리아모스 왕에게 알려야 한다고! 그러나 그가 혀를 움직여 말을 뱉어내려는 순간, 트로이를 저주하던 신들이 보낸 거대한 뱀들은 라오콘과 두 아들을 물어 죽인다.

log 활용한 정보 엔트로피 계산법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정보를 뜻하는 영어 단어 인포메이션(information)은 라틴어의 ‘informare’에서 유래한다. ‘형태를 만들어주는’이란 의미다. ‘형태’의 고대 그리스어는 ‘모프’ 또는 ‘아이도스’다. 플라톤이 제시한 만물의 근본, 즉 ‘이데아=아이도스’는 결국 현실에 형태를 주는 근본적인 그 무엇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왜 하필이면 색깔도, 크기도, 무게도 아닌 ‘정보’가 만물에 형태를 만들어준다는 것일까? 정보란 무엇일까?

직관적으로 말해 정보는 메시지다. 라오콘이 뱀에게 물려 죽지 않았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a) 우리는 10년 동안 전쟁을 했다. (b) 아카이아인들이 철수한다. (c) 저 목마 안에 적군이 숨어 있다. (a)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트로이 시민들은 늙은 라오콘을 비웃었을 것이다. (b)는 대부분 트로이 사람들이 이미 믿고 있었다. 하지만 (c)는 라오콘과 프리아모스 왕의 신들린 딸, 카산드라 외엔 그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메시지는 ‘너무나 당연할 수도’ ‘대부분 믿을 수도’ ‘놀라울 정도로 새로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세기 초반, 미국 벨연구소(Bell Laboratory)에 근무하던 랠프 하틀리와 클로드 섀넌은 핵심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전화선을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지 측정할 수 있을까? 우선 ‘정보량’을 나타낼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무게’를 나타내기 위해선 저울과 ‘㎏’(킬로그램)이란 단위가 필요하듯 말이다. 정보를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가정해보자.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답을 통해 얻는 정보가 더 많을 것이다. 이미 10년 전쟁을 경험한 트로이인들에게 ‘아카이아인들과 10년 동안 전쟁했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렇다”다. 어차피 정답은 단 하나뿐이며 그런 답은 들어봐야 새로 배울 것이 없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져 나올 수 있는 1에서 6 중 정답을 알려준다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다. 단 1개의 정답만 가능한 질문엔 정보가 없지만 6개의 결과가 가능한 질문엔 정보가 있다. 관찰될 수 있는 결과가 다양할수록 정보량이 많아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같은 주사위를 3번 던져보자. 매번 결과를 알려준다면 주사위를 한 번 던질 때보다 3배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주사위를 3번 던지면 63, 즉 216가지의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216가지 결과를 통해 3배 많은 정보량을 표현할 수 있을까? 로그(log)를 사용하면 된다. logb 63=3×logb 6.

정보량이란 가능한 답 개수의 log만큼 증가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b=2, 그러니까 2의 로그를 선택하면 정보의 단위는 ‘비트’(bit)가 된다. 동전을 던지면 ‘앞 또는 뒤’ 2가지 결과가 가능하므로 이때의 정보량은 log2 2=1 비트다. 1비트란 단 1번의 질문(예:앞인가요?)으로 동전 던지기의 결과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나올 수 있는 답들의 확률까지 고려한다면 1948년 섀넌이 정의한 메시지의 ‘부호율’, 다시 말해 정보의 엔트로피를 계산할 수 있게 된다.

현대 정보이론을 만들어낸 클로드 섀넌(1916∼2001년).

인터넷 세상엔 1.3조 기가바이트 정보
‘행동 저널리즘’이란 아이디어로 백만장자가 된 미국 언론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년)는 “뉴스란 누군가는 꼭 밝혀지는 것을 꺼리는 정보다.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냥 광고”라고 정의했다. 그렇다. 엔트로피가 높을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이기에 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다. 라오콘은 트로이 전쟁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웠기에 가장 많은 정보가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죄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신들마저도 막으려 하는 정보, 그런 것이 바로 진정한 뉴스가 아닐까?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 섀넌과 하틀리가 만든 정보이론 덕분에 우리는 정보를 입력하고 저장하며 분석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엔 약 1.3조 기가바이트(1바이트=8비트)의 정보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많은 정보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바로 우리 인간들을 통해서다. 대부분의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하다. 우선 무료 서비스를 통해 최대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다. 서비스를 더 많이, 더 자주 사용할수록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우리는 이렇게 무료 e메일·무료 소셜 서비스·무료 지도에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세상에 진정한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다. 얻는 만큼 무언가를 지불해야 한다. 구글(Google)은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도시 지도를 무료로 제공한다. ‘구글 차’로 전 세계를 누비며 얻은 사진들을 통해 우리는 지구의 모든 거리를 볼 수 있다. 물론 무료로 말이다. 하지만 더 섬세하고 더 개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선 스스로 정보를 수집해주는 ‘드론’(drone, 무인항공기)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료 서비스란 인센티브에 눈멀어 우리 존재 구석구석 모든 정보들을 마치 진공청소기같이 빨아들이고 있다. 나는 정보를 빨아들인다. 고로 나는 온라인 공간에 존재한다.

1.3조 기가바이트의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대용량의 정보에 숨겨진 의미 있는 지식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소비자의 선호도를 파악해 행동을 예측하고 이를 특정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에서 정보란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을 한다. 바로 정보의 화폐화다. 개인 정보와 데이터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본질적 가치와 상관없이 동전·지폐·은행계좌에 적혀 있는 숫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 교환 가능할 것이란 서로 간의 믿음을 통해 화폐화된다. 화폐화되기 위해선 희귀해야 한다. 감옥에서 얻기 어려운 담배는 돈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흙은 화폐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분석되지 않은 정보 그 자체는 화폐일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점점 더 개인화되는 현실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다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가장 희귀한 ‘나’에 대한 정보라면 화폐화가 가능하다.

고대 중국 신화집 ?산해경?엔 ‘제강’이란 특이한 ‘혼돈의 신’이 등장한다.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엉뚱하게 생긴 제강은 형태가 불투명한 몸통에 날개 네 개, 다리 여섯 개를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혼자 항상 즐거워 춤과 노래를 잘했다는 제강은 신기하게도 눈·코·귀·입이 없었다. 얼굴 그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제강을 불쌍하게 여긴 그의 친구들은 제강에게 눈·코·귀·입 구멍을 뚫어주기로 결심한다. 하루에 하나씩 7일에 걸쳐 구멍들을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7일째 되던 날, 그렇게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살던 제강은 죽고 만다.

무한을 유한으로 바꾸는 정보의 생리
정보는 불확실을 확실로 바꿔준다. 엔트로피는 그 과정에 필요한 정보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을 지각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던 제강은 혼돈, 그러니까 완벽한 불확실이자 무한의 가능성이다. 최대의 엔트로피인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알아보는 순간 세상도 우리를 알아본다. 우리의 내면적 혼돈과 가능성은 세상을 통해 질서와 현실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세상의 진리는 죽음이기에, 우리가 세상을 보고 세상이 우리를 보는 순간, 우리의 존재는 제강과 함께 무한에서 유한으로 바뀌는 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전(前) 직원으로 NSA의 전 세계 대상 정보수집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그는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아는 ‘혼자’란 것이 허락된 세상에서만 가능하다고. 모든 사람의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홀로일 수 없다고. 정보 사회의 어두운 미래는 구멍 7개가 아닌 100만 개의 구멍이 뚫린 ?제강?이다. 우리의 모든 정보가 모두에게 알려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하고 독립적인 ‘나’가 아니라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한 ‘우리’일 뿐이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김대식 KAIST 교수 dskim@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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