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입' 9년] 18. 육영수 여사 서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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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1971년 8월 한 행사장의 관람석에 앉아있는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

육영수 여사가 운명할 때 시꺼멓게 흐렸던 서울의 하늘이 일부 개면서 영롱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일대가 갑자기 환하게 변해 그곳을 지나던 시민은 모두 깜짝 놀랐다. 이런 속삭임도 있었다고 들었다. "저것 봐. 무지개야. 육 여사께서 승천하시는가봐." 1974년 8월 15일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남산 국립극장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육 여사는 엄청난 수혈의 응급치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날처럼 놀라고 가슴 아팠던 적도 없었다. 범인은 애초 육 여사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을 겨누었다. 다행히 연설대가 방탄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총탄에 맞지 않았다. 범인은 인간적으로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너절한 쓰레기였다. 당초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면 자결하는 것이 남자로서 떳떳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어째서 온 국민이 사랑했고, 백합꽃처럼 청초했던 육 여사를 살해했단 말인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이 비통해 하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가 딱할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잘 알다시피 희로애락의 정을 쉽게 밖으로 내놓지 않는 유교적 교육을 받은 분이었기 때문에 문상객들 앞에서는 절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녀들에게도 이 점을 각별히 일러뒀다. 그러나 밤이 깊어져 문상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혼자 육 여사 영전에서 통곡했는데, 그 울음소리가 맹수의 울부짖음을 연상케 했다. "저것이 바로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통곡소리구나" 싶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보더니 가까이 오라는 눈짓을 했다. 답답한 심경을 가눌 길 없던 차에 말 상대를 찾은 것처럼 느껴졌다. 박 대통령은 나지막하게 이렇게 말씀을 시작했다. "우리가 공식행사에 참석할 때는 언제나 내가 걸음이 빠르니까 먼저 걸어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보고 혼자서 먼저 가지말고 같이 가자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이렇게 나보다 먼저 혼자 가버릴 줄이야. 참으로…"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 대통령은 계속했다. "지금도 그 사람이 두 손을 내밀며 저 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이 손을 좀 잡아보세요. 한센병(나병) 환자들과 악수한 손이에요'라고 하면서 말이야."

아! 박 대통령에게 이처럼 애틋한 사랑의 시심이 있었구나. 이 따뜻한 인간미! 이것을 알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혹시 지금까지 박 대통령을 근엄하기만 하고 일밖에 모르며 딱딱한 인간, 그래서 책임감과 사명감에만 충실한 지도자, 이런 이미지 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나 않았던 것일까 하고 반성했다.

육 여사께서 서거한 후 국민은 박 대통령을 '사(私)를 버린 애국의 귀감'으로 받아들이는 측과 '지나친 사명감의 노예'와도 같다고 보는 측으로 갈라지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압축성장이 가져온 예상치 못했던 부산물이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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