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 위기타개 겨눈 「불·독제휴」-「유럽의 불안」에 회생의 바람 불어넣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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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 특파원】「유럽」공동시장(EEC) 9개국 외상들은 이곳 사람들의 초조어린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4일「룩셈부르크」에서 만난다. 매해 열리는 EEC 각료회담이 올해 따라 유달리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요즘 자주 이야기 되어온 소위 『「유럽」의 불안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그것은·흔히 근 반세기 중 최악의 것이라고 운위되어온 경제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EEC의 바탕 그 자체가 뒤흔들려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EEC의 파탄이 막아내 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그 밖의 영역에 걸쳐 미칠 부정적인 작용은 서방세계 전체 위기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게 이곳 관측자들간에 한결같은 우려가 되어왔다는 것이다.
사실 EEC의 귀열 위기 안에는 최근 몇 가지 경우를 통해 소스라치는 관심을 모아왔다.
영국의 노동당 정권이 EEC 가입조건의 재협상을 끈덕지게 내세우며 여의치 않을 경우 탈퇴까지를 위협해 왔다는 것은 오히려 새삼스럽지 않은 예에 속한다. 그보다도 「이탈리아」·「덴마크」 등이 경제파탄의 압력아래 역내무역에 대해서까지 관민장벽을 쌓아 올리기로 했다는 사실 등은 한결 심각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아직은 실제면에서 그저 관세동맹이나 공동 농업정책의 관장기구라는 성격에 머물러온 EEC 존립에 대한 하나의 역행적 도전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전기한 우려는 충분한 근거를 갖는다.
만일 이러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경향이 「유럽」을 통해 지배적인 조류로 된다면 서방세계 중공업국가들이 장·단기에 걸쳐 단명하구 있는 엄청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예지를 갉아 없앰으로써 불안은 악순환의 구렁텅이로 미끄러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EC외상들의 「룩셈부르크」 회담이 주목된다는 것은 오로지 이런 침울한 전망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회담이 최근의 경향을 반전시킬지도 모를 어떤 요소를 지니고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요즘세계의「매스컴」에서 흔히 운위되는 소위『불·독 추축』이라는게 바로 그것이다.
「말레리·지스카르-데스텡」 「프랑스」대통령, 「헬무트·슈미트 서독수상의 새롭고 적극적인 개입이 지금까지의 침체 속에 한줄기 회생의 바람을 불어넣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기대의 근거는 정권을 이어 받기 전 다같이 재상이라는 보다 실무적 응원에서 지금의 문제와 씨름한 이들 양인의 자질이나 적어도 그들의 지금까지의 공약들이 문제해결에 대한 앞으로의 접근에서 보다 넓은 신축의 폭과 한결 높은 전문가적 해결방법에로의 전환을 기약해 주고 있는데 있다.
물론 그것은 아직까지는 앞으로 실천되어야할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국가가 지닌 비교적 우월한 실력과 각자의 필요에 견주어본다면 그런 기대가 아주 어림없을 것도 아니다.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서방세계의 공통적인 현황 속에서도 서독은 「인플레」 율 연8%라는 파격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억누르는데 성공 해왔다. 국제 수지 면에서도 작년에 이어 금년에 『남북이 민망할 이 만큼』 흑자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나 그들 경제의 이와 같은 건전성 유지도 불가불 EEC 전체의 건전성에 의해 담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회원국의 이익을 기한다는 동기가 서독이라고 해서 유다를 수 없다고 한다해도 그들은 EEC의 활력화를 바랄 대내적 이유를 갖는다는 것이다.
또 「프랑스」역시 대외무역의 반 이상을 역내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방향이 서독의 경우와 그리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판단이요 기대다.
이들 양국의 긍정적 역할이란 그들 『자체 이익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갖는 것이고 금융통화·무역질서 등에 관련한 EEC 기구안 각종 작업반이 다루어야할 구체적인 과업들이 도시 수월치 않을 것도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독 추축』의 향도적 역할이라는 것이 지금 대단한 기대를 북돋고 있는 것은 그런 희망의 상실이 결과한 불안이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심심지 않게 운위 되어온, 이른바 「무역전쟁」 또는 「새로운 경제 대공황」 따위들의 음산한 언어들이 딴것은 그만두고 서방세계의 기본질서나 안보 면에서만 갖는 상서롭지 못한 예언은 무어라 해도 과장일게 없는 일이다.
불안이란 따져 본다면 우선은 심리나 정신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특정문제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야 여하튼 최소한 어떤 희망의 제시, 이에 의한 낙관이나 자신의 회복은 그 자체위기 수습을 위한 효율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룩셈부르크」회담에 이어 6월 18일에는 「오타와」에서「나토」25주년을 맞는 의장회의 그리고 올해를 통해 OECD·EEC 정상회담 등 각종 모임들이 줄을 잇는다.
위기수습 또는 서방세계 안보강화를 모색하는 이런 시도들이 얼마만큼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는 동맹국이나 우방간 구심적 협동자세에 입각한 희망이나 자신이 얼마만큼 북돋워 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런「테스트」의 첫무대라고 할 수 있는 「룩셈부르크」 회담에 비상한 관심이 돌려지고 있는 소이도 그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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