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대통령의 방문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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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닉슨」 미대통령은 3년 사이에 세번째의 미·소 정상회담을 위해 6월 하순에 소련을 방문하고 이보다 앞서 중동 6개국도 방문할 예정이다. 「닉슨」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제3차 정상회담은 「닉슨」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한 국내「캠페인」을 사실상 포기한 것과 때를 거의 같이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까지 중시됐던 중동의 평화협상 타결이라는 『외교적 쾌거』와도 때를 같이 하고있다.「닉슨」대통령은 지난 1년여 동안「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 국정의 운영보다는 그 자신의 『변호』와 대통령직의 『수호』에 진력하던 내정에서 외교로 역점을 옮기려 하는 것 같다.「앤드루·존슨」대통령이래 1세기 여만에 탄핵조사 대장이 돼 있는「닉슨」 대통령에게는 어느 의미에선 과거 어느 정상회담보다 『중요』한 외교 행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중동6개국의 방문에 관한 한 제2단계 평화협상의 촉구와 미-「아랍」 관계의 개선 등 친선 방문 이상의 의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반면에 미·소 정상회담의 의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2단계 핵무기 제한, 동서 감군과 안보협조회의, 중동화평을 위한 『협주』, 미·소 쌍무관계 등 타결을 기다리고있는 현안문제들이 많다.
「닉슨」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한 지론은 하위급 대표들 사이에 사전에 확고한 합의내용이 입안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무용하다는 것이었다. 「닉슨」은 「브레즈네프」와의 대좌에서 전기 현안문제들에 대한 교착상태의 타개도 중요하지만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평화-자유수호의 대통령이란·「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려는데 역점을 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소련과의 「데탕트」를 요동 없는 반석 위에 올려놓아 대결에서 협상으로, 협상에서 평화의 세대를 구축하는 업적을 쌓아올릴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닉슨」대통령은 69년의 취임사에서『역사가 수여하는 최대의 명예는 평화조성자 칭호』라고 그의 결의를 밝히고 「워터게이트」의 와중에서도 『미국은 세계평화와 자유의 열쇠를 쥐고있다. 나는 백악관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의 대통령직과 세계 평화유지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취임 5년 사이에 그전 어느 대통령도 감히 취하지 못했던 외교적 「이니셔티브」로 그가 쌓아 올린 업적은 아무도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이번의 대소정상회담과 중동방문외교에서도 세계평화를 증진시키는 성과가 거두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이 내외로 그 위신실추로 국민과 의회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가 즐겨 말하는 『힘의 입장』 에서 회담할 수 있을까 하는데 일말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세계평화를 증진시킨 업적을 가지고 귀국하려고 「닉슨」 대통령이 현안문제 해결에 값비싼 대가를 지불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미국뿐 아니라 자유세계 전체에 불행한 일일 것이다. 대소 정상회담이 그 낙진으로 국내여론의 호전을 가져올 망정 그것이 주요목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미·소 정상회담은 단순히 협상을 위한 외교나 협정문서의 조인에 그치지 않고 세계사에 흔적을 남기는 장기적 안목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연옥이 수판으로 화하는 일이 있어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는 『자리고수』와 연결되는 정상회담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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