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튀드-김성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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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야산에는,
작년에 죽은 강마른 나무들이 서 있었다.
죽은 나무들이 어둠을 서로 비비면서
성냥개비처럼 우뚝 우뚝 서 있었다.
벗어버린 다갈색 나무들.
「모차르트」를 주제로 한 바람이,
바다 쪽에서 갑자기 끌려와 죽은 나무들의 흉
터를 물어뜯고 있었다.
딱정벌레 한 마리가 별빛 속에서 기어 나와
나무들의 근육 속에 끌려가고 있었다.
다갈색의 「피아노」 소리.
누군가 밤이 깊도록「에튀드」를 치고 있었다.
좀 더 전신으로 치세요. 좀 더.
우리들의 흉악한 밤. 그 밤들이
서로 고함을 지르다가 바다에서 끌려 온
바람을 만나 마을 쪽으로 헤어지고.
지금은 몇 시쯤 됐을까.
야산에는,
작년에 죽은 단삼도의 바람이 불고.
깡마른 나무들이 어둠을 비비면서
별 빚 속에 희미하게 지워져 가고 있었다.
(주=「에튀드」는 불어로 연습곡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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