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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이산상봉·정치 연결 말자" 김정일과 2002년 평양 합의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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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5월 13일 유로아시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 방문 당시 숙소인 평양 백화원 초대소를 찾아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은 이산가족 상봉행사·경평축구 개최, 금강산댐 공동조사에 합의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산가족 문제에 관심이 높다고 한다. [사진 중앙포토]

짧은 만남, 기약 없는 이별, 그리고 통곡의 바다.

 반세기 넘게 남과 북에 떨어져 살아온 혈육들이 잠시나마 한(恨)을 달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의 모습이다. 이산상봉의 단초는 1985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진행된 고향방문단 행사다. 이후 2000년부터 지금까지 18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우리 국민 1만8143명이 이산가족과 만났다. 1000만 이산가족 가운데 0.18%에 불과한 숫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공을 들여 왔다. 지난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추진했지만 성사 직전에 취소됐다. 이번 설을 맞아 다시 시도했지만 북한은 수용 입장을 밝히면서도 세부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다음 달 17~21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하자는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3년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게 된다. 하지만 북한이 이산상봉의 전제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 성사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해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국민은 12만9264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5만7784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 가운데서도 52.8%인 3만7769명이 80세 이상의 고령자다. 지난해 상봉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김모(84)씨는 “동생과 헤어져 살도록 만든 정부를 때로는 원망했지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할 뿐”이라며 “이제라도 정부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만날 수 있도록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처음 열린 이산가족 상봉은 1971년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대한적십자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제안 이후 29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2000년 이후 매년 1~3차례 인도적 차원의 행사는 계속됐지만 남북관계의 파고에 흔들렸다. 특히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등으로 이명박 정부 때는 5년간 두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 이어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은 공약으로 내세웠던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건설이나 유럽과 한국을 잇는 철도인 유라시아 익스프레스보다 이산가족 문제에 관심이 높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풀 수 없는 문제”라며 “대통령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이산가족 상봉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한 측근은 “박 대통령이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과 만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해결하자고 합의했다. 두 사람의 합의에 따라 2002년 9월 추석을 기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고 말했다. 2002년 5월 유로아시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난 뒤 경평축구 개최와 이산가족 상봉 행사, 금강산댐 공동 조사 등에 합의한 게 계기였다는 설명이다. 약속과 신뢰를 중요시하는 박 대통령은 인도적 문제를 정치와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당시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남북관계 복원의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다”(정부 고위 관계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2박3일 이산가족 상봉은=우리 정부의 제안대로 19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경우 남과 북에서 100명씩 선정된 200명이 2박3일 동안 가족들과 만나게 된다. 대상자 1명당 5명의 혈육을 만날 수 있어 실제 상봉하는 가족 규모는 1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9월 이미 상봉 대상자 100명을 선정했으나 이 중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 상봉을 포기해 96명이 확정된 상태다.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경우 우리 측 대상자 100명은 상봉 전날 속초에 있는 숙소에서 방북교육을 받은 뒤 다음 날 아침 금강산으로 향한다. 도착 후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100가족이 한 장소에 모여 단체상봉을 하고 식사를 함께한다. 둘째 날은 가족끼리 함께하는 시간으로 짜여진다. 오전에는 가족끼리 숙소인 방에서 회포를 푼다. 개별상봉에선 선물 교환 문제를 놓고 남북 당국 간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북한은 단체로 동일한 선물을 준비해 오는 반면 우리 측은 개별적으로 가족에게 줄 선물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전직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의 선물 내용이 비교가 되는 데다 북한 당국이 선물을 한꺼번에 수거해 북측 가족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북한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래서 북한 당국이 가족들 간 개별상봉 때 선물 내용을 공개하지 말라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선물을 북한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아예 없어지거나 뒤바뀌는 ‘사고’가 발생해 불만을 사는 일이 있어 사전에 선물 내용을 알지 못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얘기다.

 개별상봉을 마치면 함께 점심을 먹고 가족끼리 삼일포에서 즐거운 한때를 즐긴다. 삼일포는 금강산 주변에 있는 호수다.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어 떨어져 있던 혈육들이 야외에서 재회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셋째 날 오전에는 1시간여의 짧은 작별상봉을 끝으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이때가 되면 금강산은 눈물바다가 된다. 처음 만났을 땐 반가워서, 헤어질 땐 아쉬워서 울고 또 운다. 남한 가족들 중에선 아쉬워 자리를 뜨지 못해 오열하다 혼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북한 가족들은 눈물을 보이며 통곡하다가도 누군가 “자, 이제 갑시다”는 말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공화국(북한)의 품 안에서 잘 있다. 잘 지내시라”는 말을 하며 자리를 뜬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북측 가족들은 어려서부터 단체생활에 익숙해 있다”며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정용수·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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