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에서 만난 마세라티, 눈길도 트랙처럼 폭풍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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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S Q4
마세라티 기블리S Q4로 눈 덮인 알프스 산길을 거침없이 누볐다. 네 바퀴에 구동력을 모두 전달 할 수 있는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에 Q4가 붙었다. 구동력이 앞뒤 바퀴로 전달되는 과정은 계기판 정보창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눈을 쌓고 깎아 만든 길이 1.6㎞의 자동차 경주장. 마세라티 기블리 S Q4는 오르막과 내리막, 굽잇길이 뒤섞인 코스를 거침없이 누볐다. 주름이 한층 촘촘한 겨울용 타이어를 빼면 기블리 S Q4는 순정상태 그대로였다. 회전구간에선 운전대를 홱 잡아채도 잠시 기우뚱할 뿐 금세 오뚝이처럼 자세를 바로잡았다. 비결은 바로 Q4. 마세라티 고유의 사륜구동 장치다.

지난 20일, 마세라티가 이탈리아 체르비니아로 전 세계 기자를 초청했다. 체르비니아는 스위스와 알프스 자락을 공유한 해발 2000m의 겨울 스포츠 천국. 눈앞엔 해발 4700m의 마터호른이 우뚝 섰다. 물가가 워낙 비싼 동네여서 이탈리아 사람도 큰맘 먹고 한 번씩 찾는 곳이다. 가파른 산자락에 뾰족지붕 늘어선 모습이 영락없는 스위스다.

이번 행사의 공식 명칭은 ‘마세라티 Q4 윈터 이벤트’. 마세라티의 사륜구동 모델을 한 자리에서 경험할 기회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세라티에선 상상하기 힘든 행사였다. 전 차종이 뒷바퀴 굴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가능해졌다. 마세라티는 최근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에 Q4를 더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와 함께 개발한 이 시스템은 앞뒤 구동력을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꾼다. 가령 출발할 땐 50대50, 정속주행 땐 0대100으로 바꾸는 식이다. 나아가 이처럼 구동력을 주고받는 과정은 계기판 정보창의 선명한 그래픽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콰트로포르테 S Q4로 가파른 굽잇길도 달렸다. 때마침 내린 폭설이 아스팔트를 희뿌옇게 뒤덮었다. 주행 모드를 ‘아이스’로 바꿨다. 그러자 엔진과 변속기, 각종 전자장비가 동원돼 차의 움직임을 최대한 매끄럽게 다듬었다. 미끄러운 노면을 조심조심 붙들기 위해서다. 격한 상황을 피하기 때문에 연비도 ‘아이스’ 모드에서 가장 좋다.

순간 가속 페달을 울컥 밟아도 엔진은 느릿느릿 반응한다. 변속기는 최대한 서둘러 기어를 올라탄다. 하지만 운전의 재미는 여전했다. 가슴을 파고드는 사운드와 정교한 스티어링 감각 덕분이었다.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콰트로포르테 S Q4는 체인 끼우느라 갓길에 늘어선 차를 유유히 지나쳐 오르막을 달려 올라갔다. ‘이 맛에 사륜구동 세단을 타는구나’ 싶었다.

이번에 선보인 사륜구동은 마세라티가 추구하고 있는 변화 가운데 일부다. 지난해 마세라티의 판매대수는 6000여 대. 역대 최고치다. 그런데 아직도 수제 스포츠카인 페라리보다 판매가 적다. 과거 마세라티는 고객을 좇지 않았다. 핏줄을 나눈 페라리의 영향이었다. 고유의 매력을 아는 극소수를 위한 차였다. 마세라티의 유별난 고집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령 이전의 콰트로포르테는 같은 엔진에 두 가지 다른 변속기를 붙였다. 듀오셀렉트 변속기 모델은 엔진을 앞 차축 위에 얹었다. 무게배분을 위해 변속기는 뒤 차축으로 뺐다. 반면 자동변속기 모델은 엔진을 앞 차축 뒤에 얹고, 바로 변속기를 붙였다. 레이싱 기술을 녹여 넣은 결과였다. 하지만 시행착오였다. 판매는 지지부진했다.

결국 마세라티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변속기를 자동으로 통일했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 기블리 등의 파생 차종을 선보였다. 기블리엔 마세라티 최초로 디젤 엔진도 얹는다. 내년엔 마세라티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르반떼도 나온다.

마세라티는 2015년 판매목표를 5만 대로 못박아 놓은 상태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신차 개발과 생산라인 증설을 위해 이미 1억2000만 유로를 투자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시장에서 해마다 판매를 두 배, 세 배로 늘리며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30여 대를 판매한 데 이어 올해는 700여 대를 목표로 삼았다.

체르비니아(이탈리아)=김기범 객원기자 (roadtest.k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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