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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 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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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월 초파일이 다가오자 또 다시 이날을 공휴일로 만들자는 건의를 불교계에서 내놓았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4월 초파일을 공휴일로 삼은 곳도 많다. 미국에도 있다. 지난 63년3월에 「하와이」주 의회에서는 「불타의 날」 법안이 통과된 바 있다. 그 근로가 매우 재미있다.
이날을 주 축일로 만듦으로써 미국인의 관용성과 종교의 자유를 세계에 과시하자는 것이다.
동 법안을 제출한 의원은 동시에 『주 축일인 「크리스머스」및 성금 요일을 폐지하는 법안』도 제출했었다. 그러자 이것은 그 자리에서 부결되었었다.
우리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공휴일로 삼은 것은 49년부터의 일. 그 당시의 대통령은 기독교 신자였다. 그 이상의 특별한 이유는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기독교 신자의 수가 불교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헌법의 정신과도 위배된다고 하는 불교계의 불만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2년 전에 새 1만원권을 만들어 낼 때 당초의 도안에는 석굴암의 석가 여래 좌상이 들어 있었다. 이때 기독교 측에서는 정교 분리를 밝힌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결국 그 도안이 바꾸어 졌다.
이 때에는 불교계에서도 반대했었다. 그것은 부처를 그렇게 더럽힐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왕에 공휴일이 된 「크리스마스」를 철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 불타의 날을 제정한다고 나쁠 까닭도 없다. 두 개의 공휴일이 있다고 나쁠 턱도 없다.
가령 「인도네시아」에는 기독교 신자를 위한 공휴일이 5일 있고 회교도를 위한 공휴일이 8일이나 있다. 회교도의 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타의 날」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 신자가 기독교 신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누구나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따지면 종교 통계처럼 믿기 어려운 것도 없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신자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은 3분의1 이하로 줄어든다.
가장 믿을 수 있다는 교황청의 연감에도 주교며 수도사의 수는 밝히고 있지만 신도 수는 나오지 않는다. 확실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타의 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이를 제정하는 사람들이나 깊이 생각할 일이 하나 있다.
어느 공휴일이나 국민 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적어도 절반 이상의 국민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것은 신도의 수가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만으로는 풀려질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불타가 과연 오늘의 우리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 주고 있는지, 그리고 불타의 날이 새로 마련된다면 이날이 얼마나 큰 역사적인 역할을 지닐 수 있겠는지, 이런 것을 깊이 가려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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