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는 가고 세대는 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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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큰딸이 혼기에 접어들고, 아들이 군대에 가서 해가 바뀌었으니, 한 세대를 20년으로 잡으면 우리의 세대는 완전히 갔고, 아이들의 세대가 온 것이 틀림없다.
이제 20년 더 지내면 손자들의 세월이 올 것이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허리가 아픈 것도 당연하다. 등산을 해보아도 10년전과는 아주 다르다. 퍽 힘이 든다. 모든 것은 흐른다고 한다. 인생도 흐른다. 가만있는 것이 없다. 나고 죽고 또 나고 죽는다. 선인도 악인도 모두 죽는다.
『세대는 가고 세대는 오고』란 말은 구약성서의 「전도서」에 보인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가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이것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이라 했다, 그는 대단한 지혜자였던 모양이다. 그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도 말하고 또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고 하는 유명한 말도 하고있다.
이 전도자는 왕으로서 지극한 영화를 누렸고 또 일생동안 지혜를 사랑하며 탐구한 사람으로서 인생의 깊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 듯 싶다. 그가 거듭 말하기를 모든 것은 헛되다고 하고있는 것이다.
아아, 우리들도 얼마나 자주,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꼈던가!
인생에는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다고 느낀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욕심의 도가니 같은 세상이야 우리가 아랑곳 할것 없는 곳이다.
먼저 우리 자신이 허무한 것이다. 온갖 욕망, 온갖 희구, 온갖 포부, 온갖 계획, 온갖 사업, 이 모든 것을 안고서 애쓰고 싸우고 분투하던 것도, 한낱 꿈인 듯, 우리 모두의 죽음이 이 모든 것을 쓸어 갈 것이다.
전도자는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 했지만 사실은 땅도 쉴새없이 변화하고 있다. 모든 것은 흐른다. 이렇게 말해오면 마치 허무주의자라도 된 양 들릴지 모른다. 허무는 진리의 한 면인 것만은 틀림없다.
땅도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영원히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허무주의자의 답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답으로써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상주의자 내지 관념론자의 답이 나온다. 의로운 것만이 영원의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관념론자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인류의 오랜 신앙이다.
세대는 가고 세대는 온다. 모든 것은 변한다. 땅도 꺼질 날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허무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 돈·권력·부귀영화―이 사실은 허무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이 허무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것들 때문에 싸우고 다투고 증오하고들 있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잊고서 하는 일들이다. 모든 일이 헛되다. 그러나 『세계사는 세계의 심판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민족사는 민족의 심판일 터이다. 이런 가운데서 오직 하나 영원의 생명을 지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의를 펴는 일 뿐이라 생각된다. 4·19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지금도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그리고 어지럽기 그지없는 이 싯점에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정의를 실현시키는 일일 것이다.
전도자는 그 글의 끝머리에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라는 묘한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마치 나 자신에 대한 말 같아서, 나는 요새 이 말을 음미하고 있다. 【최명관<숭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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