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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일각 '실언' 경질론 … 청와대, 현오석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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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오석 부총리가 24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조찬회 강연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 ‘현오석 실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소비자)가 다 정보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22일)라며 카드대란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듯한 현오석 경제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야당은 24일 현 부총리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고 여당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7박9일간의 인도·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번 실언 파문은 예상치 못한 짐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 순방 기간이었던 지난 20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선 카드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 “민간기업이 잘못한 일인데 마치 정부가 잘못한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카드회사의 정보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인 만큼 정부가 바로 나서기보단 해당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 부총리의 발언이 나오면서 비판의 화살은 정부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상 최악의 신용정보 유출 사태로 온 국민이 공황상태인데, 정부 경제팀의 수장은 국민 불안감과 분노에 연일 기름을 붓고 있다”며 “직접 책임있는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그리고 무능한 경제부총리는 변명 말고 즉각 석고대죄하고 짐을 싸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불통 정치를 부른 총체적 난맥상과 관련해 청와대와 내각에 대한 전면적 인사 쇄신이 있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김상민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어 “금융당국은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 주체로 즉시 사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수습의 주체인양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며 버티기식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여당 일각에서조차 현 부총리의 사퇴 요구가 나오자 청와대는 난감한 표정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야당의 인적쇄신 요구에 대해서 “사람 바꾸라는 게 제일 쉽게 하는 말”이라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현 부총리의 발언은 말실수이지 문제의 본질이 아니지 않느냐”며 “지금은 사태를 수습하고, 일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에서도 현 부총리의 발언이 적절치 않았다는 불만이 강하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정치권의 사퇴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현 부총리에 대한 문책보다 당장 경제살리기란 당면 과제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경제팀을 교체할 경우 올해 최대 핵심과제인 경제살리기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구상에서 밝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도 현 부총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개각을 할 경우 새 부총리감을 물색하고 야당의 공세가 예상되는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점도 박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다. 연초 개각설이 돌자 박 대통령이 김기춘 실장을 통해 “전혀 개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은 것도 업무 차질을 최소화하자는 목적이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이런 청와대의 기류를 읽고 있기 때문에 경제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사퇴 얘기까진 꺼내지 않고 있다.

 다만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심이 악화일로로 치닫거나 경제팀의 성과가 계속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여권 핵심부의 기류가 바뀌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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