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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금, 퇴직자에게도 근무 일수만큼 줘야 통상임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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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재직자에게만 주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정부 지침이 나왔다. 상여금을 주는 달 이전에 퇴직하더라도 근무 일수를 따져 지급해야 통상임금이란 것이다. 또 성과급이라도 최저 등급을 받은 임직원에게도 일부 지급된다면 그만큼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3일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의 ‘통상임금 노사 지도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18일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데 따른 행정적 후속 조치다. 이후 정부는 통상임금과 관련된 근로기준법·예규를 손질하는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본격적인 임단협 교섭을 앞두고 혼란과 갈등이 커지자 우선 일선의 근로감독관들이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이다. 통상임금은 연·월차수당, 연장·휴일근무수당, 야간근로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여기에 정기 상여금 등이 들어가면 전체 임금이 오르는 효과가 생긴다.

 지침은 법원 판결에 따라 상여금의 지급 주기가 1개월(1임금지급기) 단위를 넘어가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규정했다. 각종 복리후생 수당도 마찬가지다. 판단의 기준은 명칭이 아니라 실제 성격이다. 일정한 자격 기준을 가진 모든 근로자(일률성)에게, 미리 정해진 일정 기간마다(정기성), 업적·성과와 같은 추가 조건과 관계없이 미리 확정(고정성)돼 지급되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통상임금이 아닌 대표적인 경우는 근무실적 평가에 따라 받는 성과급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어떤 경우라도 최소액은 보장해준다면 그만큼은 통상임금이다. 예컨대 1, 2, 3 등급으로 실적을 평가한 뒤 최저 등급인 3등급을 받은 사람에게도 기본 성과급 10만원을 줬다면 이 10만원이 통상임금이 된다.

 또 정기 상여금이라고 해도 모두 통상임금은 아니다.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줄 경우는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게 정부의 지침이다. 세 가지 요건 중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12월에 정기 상여금이 지급되는 기업에서 11월 퇴직한 직원에게는 상여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이 직원에게도 근무 개월 수에 따라 일부 상여금을 준다면 이는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정기 상여금이 된다.

 최근 고용부가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분의 1가량만이 퇴직자에게도 정기 상여금을 근무 일수에 따라 계산해 지급했다. 결국 나머지 기업의 경우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올 임금협상 과정에서 재직자 요건을 넣으려는 사용자와 퇴직자까지 확대하려는 노조 간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노총은 “모든 상여금과 수당에 ‘재직자 기준’을 추가하려는 사측의 편법을 조장할 여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이날 정부가 내놓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의 만료 시점을 놓고도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간 덜 받은 임금에 대한 소급 청구는 사실상 허용하지 않았다. 신의칙이 중요한 근거였다. 노사가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던 상태에서 임금조건을 정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이 판결 이후로는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런 신의칙이 적용되는 기한을 기존 노사 간 합의가 만료될 때로 해석했다. 새로운 임협이 체결되기 전에는 소급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노동계는 판결일(12월 18일)부터 체불된 임금에 대해서는 소급 청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도지침은 임금협약 만료일까지를 신의칙 기준으로 설정해 체불임금을 못 받게 하는 것은 물론 판결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재계는 정부가 기존의 통상임금 요건이던 ‘1임금지급기(1개월)’를 폐지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올해 임단협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논란이 된 부분을 입법을 통해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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