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아마존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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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적도가 다 그렇듯이 「아마존」강도 네 계절은 없으나 우기와 건기로는 나뉘어 있다. 지금은 우기여서 「정글」이 더욱 우거졌으며 숲이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만큼 빠른 것 같다. 이것이 세계에서도 가장 무성한 「아마존」 「정글」의 생태다. 여기서는 모든 생물이 강렬한 힘으로 꿈틀거린다.
밤이었다. 벽이 없는 「인디오」 집에서 누워 저만큼 펼쳐진 「정글」 바라보노라니 무서움보다는 아늑한 느낌이 든다.
두서너 시간 전에는 「마스네」의 「엘레지」에 못지 않은 지상 최대의 비가랄까, 아니 만가라 할까, 강한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짐승의 절망적인 비명이 「정글」을 울렸는데 이런 일이 자주 없는지 줄곧 죽음의 세계와도 같이 조용하지 않은가.
인디오의 마을은 어둠 속에 싸여 있다. 어쩌다 장마 구름 틈으로 하늘의 별이 비치는데 낮과는 달리 정녕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별을 가장 사랑한 사람은 철학가 「칸트」라고 하지만, 모르긴 해도 그가 이 「아마존」에서 별을 보았다면 얼마나 더 기막힌 별의 형이상학」을 읊조렸을까. 『하늘에는 별빛, 내 가슴에는 도덕률』이라는 그의 묘비명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마존」 하늘에 뜬 별은 「밤의 요정」이나 「우주의 정」의 눈동자들이랄까, 어떤 생명 이상의 것을 지니는 듯하다.
삼라만상이 깡그리 이 별의 계시를 받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환상을 자아낸다. 더구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이 그리던 이 「아마존」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빛임에랴.
「아마존」에 대한 나의 애착은 결코 과대망상증은 아니며 누군가 와 보아도 이 원초적인 자연 속에서는 크나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으리라 .더구나 비밀의 「베일」에 가려진「아마존」의 「정글」이 아닌가.
이 집주인과 가족들은 쿨쿨 잠을 자는데 나는 「정글」위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어둠에 싸여서 이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낯선 사람들 같지가 않다. 어느새 형제처럼 친해졌으니 말이다.
낮에 이 마을에 왔을 때에 느낀 것은 이 「인디오」의 가족 제도는 일부다처제라는 것이었다. 책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의 원주민들도 그러했다. 내가 지금 쉬고 있는 이집 「인디오」 주인도 아내를 셋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니까 내 옆에 주인이 누웠고, 그 다음이 그의 세 아내와 자식들이 누워 있다.
우리나라처럼 웃간이나 사랑방이 없기 때문에 벽도 없는 한방에서 온 식구, 아니 낯선 나그네인 나까지도 함께 자는 것이다.
「아마존」의 일부다처제는 야만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이들에겐 위생 관념이 발달하지 않은데다가 이곳의 가혹한 자연 환경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셋 낳으면 둘은 어렸을 때 죽는 만큼 사망율이 높기 때문에 권세가 있거나 좀 부유한 가장은 자손을 많이 낳으려고 아내를 여럿 거느리게 된 것이 아닌가 느껴졌다. 이것은 물론 이들 「인디오」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기보다는 자연적으로 그리된 것이다.
그런데 「인디오」의 인구는 남녀가 거의 같은 비율일텐데 일부다처제가 되면 총각이나 홀아비로 늙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존」의 「인디오」들은 여자를 외부에서 빼앗는 싸움을 벌인다고 들었었는데 내가 쉬는 이 마을도 그런지는 모르나 낮에 그들의 인상을 보았을 때는 이런 싸움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온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어질고도 명랑했기 때문이다. 원시 사회나 다름없는 이 원주민 사회에 이런 속성이 있다는 것은 축복 될 일이다.
더구나 이들에게서 감명을 받은 것은 문명인이 지니는 비윤리적인 잡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집에서 저녁 식사를 들 때 느낀 바지만, 세 아내끼리 조금도 질투하는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으며 아내들의 위치가 서로 동등해 보였다. 문명인들의 일부다처제에서는 도저히 이런 분위기를 이룩할 수가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잠기다가 고달픈 탓으로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밖이 환히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크게 하고는 일어나 이른 아침의 「정글」의 생태를 살펴보려다가 어제의 무서운 일이 생각나서 그만두고 마을 집들을 두루 다녀보기로 했다. 이것은 물론 이들의 일부다처제가 사실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벽이 없어 이들의 잠자리가 잘 보이는데 부지런한 집에서는 아낙네들이 벌써 일어나서 아침을 짓는 준비를 하고 있다.
눈인사를 던지니 매우 반겨주었다. 안보는 체 하며 여러 집안들을 살짝 엿보았는데 한 가장이 잎에 두서너 아내를 거느리고 사는 집도 있었다. 아마도 일부다처제는 사실인가 보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는 내가 들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앉아 얻어먹을 수가 없어서 물을 길어다 주었더니 부시시 일어난 그의 한 부인은 펄쩍 뛰며 더 긷지 못하도록 물그릇을 빼앗는다. 「인디오」 여자가 갸륵한 것은 동양 예의지국인 우리나라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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