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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들 "남녀공학高 가기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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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사는 朴모(16)군은 집에서 버스로 30분 가량 걸리는 혜화동의 동성고에 다닌다. 朴군은 집 근처 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공동학군' 내 남학교 세 곳에 지원해 지난달 동성고로 배정받았다.

朴군이 통학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공동학군으로 간 이유는 남녀공학에 있으면 평소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여학생들에게 밀려 내신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내 공동학군 내 남학교의 경우 전체 신입생 5천5명 중 절반에 가까운 2천3백55명이 朴군처럼 타 지역 출신이다.

최근 들어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는 남학생들이 남녀공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남녀공학에선 여학생들이 상위권을 휩쓸어 대입 내신성적에서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남녀가 함께 다니는 중학교 때부터 성별 성적 차가 벌어지면서 고교 진학 때 남학생 부모들이 남학교를 집중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 S중 교사 鄭모(52)씨는 "남녀공학인 인근 S고가 명문인데도 전교생의 10~15% 정도가 위장전입까지 해 남학교로 가려 한다"며 "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학생이 성적이 좋을수록 이런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남녀공학에 배정받았는데 남학교로 바꿔줄 수 없느냐는 민원전화가 종종 온다"고 밝혔다.

고교 배정은 학군 내 추첨이 원칙이므로 남녀공학 여부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남학교 선호 학생들은 서울시내 중심부의 29개교로 이뤄진 공동학군을 이용한다.

학생 수가 부족한 공동학군의 경우 서울시내 전역에서 학교별로 지원받는데 남학교가 16개이고 공학은 단 2개(나머지 11개는 여학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올해 공동학군에 지원한 남학생 8천3백12명 중 공학에 지원한 경우는 3백85명으로, 여학생 지원자(5백76명)의 3분의 2에 불과했다.

◆전교 10등 내 여학생이 7명=본지 취재팀이 서울 강남북의 남녀공학 중.고교 15개를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13개교에서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보다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북의 S고 1학년의 경우 전교 1~30등을 모두 여학생이 차지했으며, D고 3학년의 경우 여학생 3반.남학생 5반인 데도 전교 10등 내 여학생이 7명이었다.

또 M중은 전교 10등 내 7~8명이 여학생이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교 10등 내 6~8명이 여학생이었으며, 평균점수도 여학생이 5점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요즘 아들.딸 구별없이 자녀 교육에 관심을 골고루 쏟고, 여학생들이 언어.예능 과목에서 남학생보다 전반적으로 우세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진단했다.

특히 수업태도.보고서 등 '수행평가'가 2001년부터 중.고교 전학년 성적에 30%씩 반영되면서 이런 평가에 강한 여학생 우세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고교 교사 李모(56) 씨는 "수행평가의 경우 남학생들은 아예 안내는 경우도 많다. 여학생들의 성실함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학생들의 남녀 공학 기피가 과민반응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대학 입시에서 과목별 석차가 가중치에 따라 반영되기 때문에 종합성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 신목고 권영춘 교감은 "자체 실시한 국.영.수 지필평가에서 남녀 학생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며 "남녀가 함께 배울 때의 교육적 효과를 앞설 정도로 내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희령.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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