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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이 과격한 반이스라엘군동|중동회담 전후안 「이」점령하의 아랍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근 있은 「세네바」 중동명와회담윰 전후해서 동「예루살램」·「요르단」정서안및「가자」지구등 「이스라르 점령하의 「악랍」주민들온 그 어느때보다드 반 「이스라솰 똴동읍 활발히 벌이고있다.
21인명의부장자를 낸동「예루살램」에서의 수류탄폭발사건· 「헤블런」 시번화가에서 일어났던 「아랍」무장 「게릴라」와 「이스라엘」 치안 경비대간의 충돌·「냐블즈」시에서의 「이스라엘」탁정장관에대한 수류탄투척사건등 12월들어서부터 번진 일련의 사건들은 점령기간 6년을 통해 전래가 없을만큼 과격한 것이었다.
67년 6일간전쟁후 영토가 세배반이나 늘어나고 1백만명(「요르단」서안·탸만명, 「가자」지구 약구만명, 「후시나이」반도와 「골란」고윈 약1만명)의 「아랍」인들에게까지 통치권을 행사하개된 「이스라엘」은 점령지구 구석구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위해 「히를리」이후 처음이만큼 열심히 견습 닦고 「퍼트를」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그동안「아랍」주민들의 반「이스라엘」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르단」강을 건너 서안으로 잠입하는 「아랍」인들과 합세, 점령정책에대한 항의사업과 「사보타크」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스라엘」측은 이같은 반「인」 활동에대해 어느 한계까지는 묵인해 왔다고 말해왔지만 「아랍」측 주장에 따르면 철저한 보복이 가해진 것으로 돼있다. 그들은 「단체기합」이라는 명분으로 기분내키는대로 통금시간을 연장했으며 「테러」범이 들어있다는 혐의만있어도 그 건물이나 가옥을 송두리째 폭파해버렸다. 「예루살렘」외곽에서 만도 3천동이상의 건물과 가옥이 이같은 혐의로 폭파됐다고한다.
그밖에도 「이스라엘」당국은 반 「이」활동을 벌인 혐의로 지난 6년간 3백명이상의 저명 「아랍」인사들(대부분 변호사·의사)을 「요르단」왕국으로 강제추방한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10일만해도 동「예루살렘」의 변호사1명과 「요르단」강서안의 반 「이」 운동가 7명을 「행정조처」라는 명목으로 강제추방했다.
지금까지는 점령지구에서의 반「이」활동이 국외에서의 「팔·게릴라」활동과는 구별돼서 취급돼 왔지만 제4차중동전쟁반발후「알제」「아랍」수뇌회의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팔레스타인」주민의 유일한 대표라고 인정한 후부터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예루살렘」구시의 회교최고회의는 「알제」회의의 이같은 결의를 지지했고 지난10일「요르단」으로 추방된 8명중의 1명이 회교최고회의의 「멤버」였다.
그런가하면 「알제」 회의 직후 「팔」해방기구의 대표권을 부인하는 전「팔레스타인」회의 소집구상이 피점령지구의 일각에서 대두됐다는 사실과 「후세인」「요르단」왕이 이같은 구상ㅇ 찬성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연방국왕을 욕심내고 있다는 점등으로 볼 때 정세는 아직 유동적이랄 수밖에 없다.
아뭏든 최근의 활발한 반「이」반동이 「.제네바」회담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존재를 뚜렷이 내보이려는 목적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이같은 「딜레머」속에서 피점령「팔」주민이 PLO를 선택할것인가, 「요르단」에 복귀할것인가, 아니면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하는 길을 모색할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는 지금으로서는 점치기 어렵다. 다만 한가지 중동분쟁의 열쇄를 쥐고있으면는 이들의 향배가 암으로도 개속 그 중요성을 더해가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주원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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