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받던 보육원 출신 장애인이 '기부천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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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계점 태성당 대표 장태호(53)씨.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올해로 31년째 보육원·양로원 등에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나누는 것이 즐거운 취미가 됐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31년 전인 1983년. 시계수리공으로 처음 받은 월급 15만원 중 절반 가까운 7만원을 뚝 떼어 빵을 샀다. 그걸 들고 장애보육시설 대구 성보재활원을 찾았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지체장애 2급) 그가 어릴 때 자란 곳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부가 30년 넘게 이어져 총액이 수억원에 이르렀다. 자신의 시계점을 차린 지금은 처음의 10배인 70만원어치 생활필수품과 먹거리를 들고 매달 보육원을 찾는다.

 대구 신천동 ‘태성당’ 대표 장태호(53)씨. 경북 포항을 고향으로 기억하는 그는 네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가난했던 가족은 아이를 포항수녀원 부설 보육원인 성모자애원 앞에 두고 갔다.

 보육원에선 장애가 있다고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다. 장애 보호시설인 성보재활원으로 옮겨야 했다. 10대 후반 자립해 보겠다며 무작정 재활원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장애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노숙을 하다가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파 다시 성보재활원으로 돌아갔어요. 그때 돈을 벌어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재활원에서 2년간 직업 훈련으로 시계수리 기술을 배웠다. 견습생 생활을 거쳐 83년 경남 거창에서 정식 시계수리원으로 취직했다. 빵 7만원어치를 사들고 성보재활원에 간 게 바로 이때였다. “행복은 전염되더군요. 빵 먹으며 기쁜 표정을 짓는 아이들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씨는 “그 느낌 때문에 기부를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게를 차리면서 주머니에서 꺼내는 돈이 늘었다. 10년 전부터 매달 70만원이 됐다. 성보재활원과 또 다른 보육원 애망원·애활원에 치킨·돼지고기·비누·휴지 등을 사다주는 돈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보육원 출신 5명에게 매달 5만~10만원의 생활비를 보태주고, 수시로 양로원에 간식거리를 장만해 간다.

 85년 전국기능올림픽대회 시계수리부문 금메달을 딴 그는 2000년부터 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일주일에 한두 차례 가게로 불러 시계수리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80여 명의 시계수리 기술자를 키워냈다.

 스스로도 얼마나 기부했는지는 2011년 알게 됐다. 대한민국 최고 기술자에게 주는 ‘명장’ 인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명장 심사를 할 때 기술만 아니라 선행을 얼마나 하는지도 본다는 말에 적어둔 기부 기록을 살폈다. 합이 2억3000만원이었다. 명장은 신청 직후 시계수리 부문이 없어지는 바람에 되지 못했다.

 10년 전 결혼한 그는 “자녀가 없어서인지 기부를 하면서도 돈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원을 밝혔다. “언젠가 작은 복지시설을 만들고 싶습니다. 배불리 먹여주고, 시계수리 기술도 가르쳐주는 그런 시설을요.”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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