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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정의례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허례허식에 50만원까지의 벌금을 과할 수 있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은 비상 각의에서 가능했던 입법의 하나였다
1월23일 박 대통령의 보사부 연두 순시 때 처음 법제화가 건의되어 다음달 26일 각의를 통과하기까지 소요 기간은 1개월3일. 『생활 풍습까지 법으로 묶을 수가 있느냐』해서 세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지만 어쨌든 생활 개혁치고는 최단시일 안의 성사인 셈이었다.
69년3월 권장 위주 인구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었을 때의 정부 방침은 『고래의 풍습을 일조일석에 고칠 수 없다』고 보고 금년 말까지 계속 계몽 사업을 벌이기로 했던 것인데 결국 1년을 앞당겨 법제화가 된 것.
이처럼 법제화가 앞당겨진 것은 『전국의 연간 관혼상제 비용이 1천억원을 넘을 것』이라는 보사부의 추정 보고가 주효했기 때문이지만 작년 연말 상례를 치른 정부의 고위 당국자로부터 『실제 지켜본 준치에 미신적인 요소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번거로운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강제 규정을 두더라도 생활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입법이 빨랐다는 뒷얘기. (K기자 수첩에서)
가정의례법의 원안자는 소관 부서인 부녀국 (국장 김영자)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기안자는 이두호 법무관이었다. 이 법무관이 소관 부서에서 원안을 만들어온 관례를 깨고 법제화의 책임 역을 떠맡은 것은 업무도 업무지만 『어릴 때 서당 공부를 해 한문에 밝다』는 온고의 실력이 인정됐기 때문(?).
이 법무관은 기대대로 ▲국사 대관 ▲백과 사전 ▲가정의례준칙 및 해설 (구 준칙 공포 때 보사부서 펴낸 홍보 책자) 등 3가지 책을 참고 문헌으로 펴놓고 연두 순시. 4일만에 법안을 성안, 기린아 (?)로 각광을 받았다.
당초 원안엔 현재 금지 사항인 청첩장·부고장 인쇄 개별 고지 등 6개 행위 외에 축의금과 부조금을 받는 행위도 처벌케 돼 있다. 모든 폐단이 따지고 보면 수금 (?)에 있으니 무엇보다 이를 처벌해야 된다는 발상에 의한 것. 그러나 이 조항은 장관 주재 가정의례 심의위에서 『청첩장과 부고장의 남발만 막으면 사회에 끼치는 부담감은 없어질 수 있다』는 완화론에 밀려 삭제-. 또 『수금한 돈을 몽땅 몰수하도록 하자』는 강경론도 있었지만 이 역시 『벌금을 물리는데 의의가 있지 액수에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는 중론. 앞에 물러났다.
그러나 이같은 벌금 조항 존재 의의론은 정작 벌금 액수 규정에 가서는 빛을 잃고 말았다.
당초 『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료』로 돼있던 원안 액수가 법제처 이첩 직전 이 장관 「펜」대에 의해 『5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40만원이나 「인플레」(?)된 것이 그것. (H기자 수첩에서)
1월 하순 가정의례법의 골자가 알려지자 항간에서 『우리 국민이 자기 분수에 얼마나 맞지 않는 생활을 하기에 법까지 만들어 타율적 생활 지도를 받아야하는가』고 탄식을 금치 못한 이 (연세대 최이순 가정대학장 등)가 있었지만 비상 각의에서도 장관끼리 말이 오갔다.
Y장관이 『실상 분수에 넘치는 것을 하는 자는 일부 사회 지도층이니 그들만 처벌하고 일반 서민은 계몽으로 그치는 것이 좋겠다』고 일률적 처벌에 반기를 들고나서자 헌법학도인 이 보사부장관은 『만인은 법률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문을 들고 나와 한차례 갑론을박-.
말인즉 만인은 법률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이 그를 리 없어 이 문제는 공무원법상 법률 준수 의무와 관련, 『가정의례법에 공무원과 국영업체 임직원은 솔선수범해도 된다』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하는 절충으로 드디어 3월3일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6월1일 법의 발효로 혼·장·제례의 풍속도는 많이 변모했다.
봄·가을이면 낙엽처럼 쌓이던 청첩장 및 부고장의 남발은 올 가을에 분명히 가신 것 같고 지난 6월4일 아버지 장례 때 굴건 제복을 했던 서산 최용재씨 (41) 형제가 첫 입건된 뒤 굴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
답례품 금지에 따라 선물 전문 가게 및 예식장 선물부도 자취를 감춰 딴 일자리로 옮겼고「케이크」부대들에도 덩달아 서리-.
그러나 기껏 실천의 문턱에선 법도 일부 교묘히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지러지는 현상도 없지 않다. 청첩장 대신 편지로 예의 「고지서」를 발부하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가하면 예식장엔 벌써 붓글씨로 청첩을 알려주는 필경 대서업이 등장했다는 소문도 나있다. 그러고 보면 가정의례란 계몽에 의한 풍습 순화가 역시 요체임이 분명-. (M기자 수첩에서) <정리=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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