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도 안돼 사라진 '현진건 어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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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세기 초반에 나온 소설가 현진건의 작품에는 땅김을 맡다(죽다), 감투 끝까지 빠지다(여자의 미색에 홀딱 빠져 정신이 없다), 곁을 바르다(곁에서 비위를 맞추다) 등 표현이 나온다. 1백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지금은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말들로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국립국어연구원(원장 남기심)이 최근 발간한 '현진건의 20세기 전반기 단편소설 어휘 조사' 보고서에는 묵혀버리기 아까운 말들이 너무도 많다고 지적했다. 국어사전에는 올라 있으나 거의 고어가 돼버린 '현진건 어휘'는 가슴거리(가슴걸이).개소리괴소리.개자리.굼튼튼하다 등 3백5개 항목이나 된다.

지난 1세기 남짓한 동안에 사라져버린 말은 비단 이뿐 아니다. 계속해서 현진건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이런 말들로는 가리누기하다.녹실거리다.진답다.길어금.변두머리.고독살이 등이 있다.

현진건 작품에서 보듯이 20세기 전반기 문학작품에는 사라져가는 한국어뿐 아니라 당시 문화상을 보여주는 어휘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는 평이다. 이번 조사에서 특이한 점은 남한 국어사전에는 없으나 북한 국어사전에는 올라 있는 어휘가 상당수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넙주룩하다.단쇠.단행랑.목고개 등이 그것들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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