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의 확정과 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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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4년도 예산안이 2일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확정되었다.
총규모 8천6백27억원으로 짜여진 정부안 원안대로 확정되었다.
현재의 국회상황으로 보아 정부안이 크게 수정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누구나 예측하기는 했지만 정부안이 이번처럼 실질적으로 심의되지 않고 확정된 일은 없었다. 현재의 국회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임이 예산심의임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딴 일에 시일을 소모하고 고유의 소임을 등한히 한 것은 국민으로서 납득할 수 없다. 이렇게 고유한 기능조차 수행하지 않는 국회가 자기들의 세비문제나 해결하는데 급급한 것은 결코 떳떳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이 말하여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국회처럼 많은 관심을 집중시킨 때도 없었다. 복지연금법안·국민출자기금법안·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 등 모는 국민이 관심있게 주시하던 사항들이다.
또 이번 예산안은 석유류 파동이 일기 전에 편성되었던 것이므로 비현실적인 경제전망을 전제로 해서 성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태가 전혀 달라짐으로써 야기되는 전제의 변경을 충분히 반영하여 예산을 조정하는 것이 도리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침체과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우리의 경제정책이 전제하는 수출「드라이브」를 통한 성장전략이 정면으로 문제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문제는 국내산업생산의 지속적인 신장에 큰 타격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집중형 투자예산에 대해서 아무런 손질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형식적인 예산심의가 불가피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국회는 스스로 반문해야 할 줄로 안다. 분명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보고서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면 이미 그것은 논리성을 갖춘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맹목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행정부가 기존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행정부의 정책에 모순이 있고 그 정책의 전제에 변화가 생겼다면 국회가 이를 바로 잡아 주어야만 행정부와 입법부가 분리되는 이유가 살아나는 것일진대 국회가 그 고유의 기능을 포기한다면 국회의 존재이유 자체가 문제시된다.
기왕 74년도 예산안은 국회의 손을 떠난 것이므로 국민은 행정부의 예산운영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행정부는 예산안의 편성당시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여건을 직시해서 예산운영을 보다 경제동향에 부합하도록 탄력화 시켜야 할 것이다.
국내경제경향은 경기침체와 「인플레」라는 세계적인 현상 때문에 생산의 정체와 강력한 물가압력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팽창예산으로서 그대로 확정된 74년도 예산안을 그대로 집행할 것이 아니라 경기동향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집행해 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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