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거부, 유감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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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역시나 실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남측의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대해 북한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민족의 명절인 설을 계기로 상봉 행사가 성사되기를 기대했던 이산가족들로서는 또다시 실망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어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명의의 전통문에서 “남측의 제의가 진정으로 분열의 아픔을 덜어주고 북남 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최근 군사훈련 등을 거론하며 남한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열어뒀다. 다음 달로 예정된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취소하고,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 협상에 응하면 이산가족 상봉에도 응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듯이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와 무관한 인도주의의 문제다. 60여 년 전 전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느끼는 인간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적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는 것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비인도적 처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한 데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다.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밝힌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진심이라면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 북측이 시간적·계절적 요인을 든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시일이 촉박한 것도 사실이고,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거동하기엔 날씨가 추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못할 것은 아니다. 남북이 결심만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재고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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