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저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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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 요즈음 우울하다. 한가지 일도 아니고 두가지 일로 우울하다. 며칠전 여학교 동창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고 오랜만에 「친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프리츠·뢰스리스버거」가 그랬던가? 『인간은 일단 의식주의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친우를 원하고, 동료와 집단을 구한다』고. 동창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것은 절대로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친목계란 이 모임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시어머니의 고약한 말버릇, 1년 열두달 한번도 이부자리를 개는 일이 없는 남편의 게으름,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자정이 다되어서야 귀가하는 옆집 남편의 주정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욕 시합을 한다. 물론 난 바쁘다는 핑계로 동창회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는 낙제동창생이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 우리 먹기 친목계에 정말 안 올래? 그런데 안 오고도 행복할 수 있으면 안 와도 좋아』란 말은 나를 정말 우울하게 만들어 주었다.
또 한가지, 내가 한때 여학교에서 가르쳤던 한 학생이 최근에 가출을 했다. 그 학생의 집은 꽤 부유한 편인데, 아버지는 「황혼병」에 걸려 새벽에 들어오기가 일쑤이고, 어머니는 친구 집에 가서 화투를 치다가 아버지와 거의 같은 시각에 귀가하여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돈의 여유가 생기면 여성들은 답답증을 안고 방황한다.
물론 「부모부재」의 상황을 빚는 데에는 남성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성들이 늘 가정 밖으로 겉돌며 이 새장에서 가장 못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또 아내는 아내대로 무료함과 기다림에 지쳐서 집 밖에서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다. 그때에 남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남성을 탓하고만 있으면 여성은 영원히 구제 받을 길이 없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복지사회후원단체를 만든다든가, 요사이 한창 제철인 연극의 후원단체를 조직하여 너무나도 경제적으로 침체상태에 빠져있는 연극을 부흥시키는 문화사업을 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유망한 지방 우수운동선수들을 돕는 후원체를 주선해도 좋다. 가치 있는 활동을 하는 데에서 삶의 동기를 충족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여성은 한 명도 없으리라. 일은 찾아서 해야 한다. 여생들의 저력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폄직도 한데, 우선 나부터도 나서서 좋은 일들을 서두르지 못하고 누워서 침만 뱉고 있으니 더욱 우울하기 그지없다. 【오혜령(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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