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찰나의 감각에 생사를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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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본선 16강전>○·구리 9단 ●·안성준 5단

제15보(153∼170)=프로바둑의 ‘연령’이 자꾸 내려가는 것은 ‘속기’ 탓입니다. 시간을 조금만 줘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착각이 초읽기 속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데요, 최근 이세돌 9단의 예를 보더라도 갑자기 착각이 많아졌지 않습니까. 나이 들면 경험과 더불어 판단력은 좋아질지라도 뇌의 순발력과 지구력은 약해지는 느낌입니다. 그중 어느 쪽이 순간적인 착각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국면은 거의 아수라의 상황입니다. 사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초읽기 탓에 수를 다 볼 수 없거든요. 153과 154는 쌍방 절단을 막은 수고 155, 157은 흑을 살리며 백을 위협한 수입니다. 158이 놓인 상태에서 이 백의 사활은 어찌 될까요. 처음엔 ‘참고도’처럼 패가 되는 줄 알았는데 한 방에 죽는 수가 있다는군요. 그건 어디일까요. 구리 9단,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감고 160으로 틀어막아 중앙 흑 대마를 노립니다.

 160은 사실 어마어마한 곳이지요. 이 한 수로 좌변에서의 흑의 권리는 거의 말소되었고 백A로 두는 수는 더욱 커졌습니다. 안성준 5단도 161로 파고들어 B의 절단을 노립니다. 164로 그걸 방지할 때 165로 또 파고듭니다. 집을 깨자는 게 아니라 살자는 거지요. 170까지 선수로 한 눈이 만들어졌습니다. 꽤 논리적으로 설명했지만 현재 상황은 생사를 건 난전입니다. 흙먼지 자욱한 속에서 강수, 살수가 난무하는 거지요. 논리가 아니라 찰나의 감각이 모든 걸 결정하고 있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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