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빈곤 탈출의 첫걸음은 저성장 탈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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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빈곤 탈출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한번 저소득층으로 추락하고 나면 여간해선 중산층으로 발돋움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소득계층 변화를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빈곤을 벗어난 저소득층 가구 비율이 2005~2006년에 31.71%였으나 2011~2012년에는 23.45%로 떨어졌다. 빈곤 탈출률이 7년 사이에 8.26%포인트나 줄어든 것이다. 2005년만 해도 저소득층 가운데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1년 안에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상승했으나, 2011년에 저소득층이었던 가구는 셋 중 하나만 저소득층을 벗어난 셈이다. 그만큼 소득계층의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빈곤 탈출이 어려워지면 당사자의 좌절과 고통이 커지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복지 수요가 늘어나고 사회적 불만과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빈곤 탈출률이 떨어진 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저성장(低成長)이다.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일자리와 소득을 얻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줄어든 것이다. 2005년 무렵 5%대를 유지하던 경제 성장률이 2012년 2%로 낮아진 것과 빈곤 탈출률이 떨어진 것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저소득층을 중산층 이상으로 끌어올리자면 무엇보다 경제 성장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또한 저소득층에 일자리와 소득 창출의 혜택이 많이 돌아가는 내수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 성장의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복지정책도 저소득층의 자립과 자활을 도울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창업 지원 등 생산적 복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저소득층의 빈곤 탈출을 돕는 것은 이제 현대 국가의 기본 책무가 됐다. 다만 퍼주기식 복지 정책만으론 복지 의존성을 높여 오히려 빈곤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크다. 생산적 복지에 주력해야 할 이유다. 빈곤 탈출의 첫걸음은 저성장의 탈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