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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홀대 심화 … 학업성취도 점점 나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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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의 핵심 중 하나가 과학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과학에 쏟는 관심은 국어·영어·수학에 비해 부족하다. 중앙일보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중학교 62곳의 2012학년도 학업성취도 평가를 분석해보니 이런 경향이 뚜렷했다. 이들 학교 중 국·영·수 3개 과목에서 전교생 90%이상이 보통학력 이상의 결과를 낸 곳은 22개교였다. 하지만 과학에서 이만큼의 성적을 거둔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강남 3구 학교 중 국·영·수 학업성취도가 ‘보통학력 이상’인 학생 비율은 대청중이 96.8%로 가장 높다. 이 학교 학생 중 과학에서 ‘보통 학력 이상’을 받은 비율은 86.8%로 국·영·수에 비해 낮다. 국·영·수에서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대청중 다음으로 높은 대왕중(95.8%)도 사정은 비슷하다. 과학이 78.4%로 국·영·수 비율에 비해 적다. <표 참조>

 학업성취도평가는 상위권을 가리는 게 아니라 하위권을 돕기 위한 시험이다. 학생별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해 일정 기준에 못 미치는 학생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게 목적이다. ‘보통학력 이상’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성취목표의 50% 이상을 달성한 학력이다. 학습을 따라잡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런 학생의 비율이 낮으면 학업내용을 이해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의미다.

 

과학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보통학력 이상을 받은 학생 비율이 전년도보다 줄어든 학교가 62곳 중 45곳이라는 점이다. 강남 3구 학교 중 이 비율이 전년도보다 높아진 곳은 강남구 봉은중, 언주중, 서초구 세화여중, 송파구 가원중 등 17곳(전체의 27%)에 불과했다. 국·영·수는 전체의 74%에 해당하는 46개교에서 학업성취도가 전년도보다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강남 3구 중학교 가운데 국·영·수의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은 강남구 수서중(70.8%), 서초구 언남중(68.9%), 송파구 배명중(60.9%)이다. 이들 학교에서도 학생 10명 중 6~7명 이상은 세 과목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학에서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교는 수업을 이해 하는 학생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과학에서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50%를 넘지 못하는 학교가 강남구 언북중(49.4%), 개포중(45.1%), 서초구 언남중(45.4%), 송파구 문현중(49.7%), 세륜중(48.5%), 오주중(43.9%), 배명중(39.3%) 등 7곳이나 된다.

 강남 3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영·수 학업성취도 상위 30위 학교는 모두 학생 중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95%를 넘었다. 하지만 이중 과학에서도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95%를 넘은 곳은 부산국제중(100%), 충주미덕중(100%), 서울 대원국제중(96.3%), 경기 청심국제중(98.1%), 충북 원봉중(96.4%) 5곳뿐이었다(응시인원 50명 미만 학교 제외).

 국·영·수에 비해 과학 성취도가 낮은 이유는 뭘까. 교육 전문가들은 인문·자연계열을 구분해 학생을 선발하는, 현재 대입 제도를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국·영·수는 계열에 관계 없이 필수이지만 과학·사회는 계열별로 선택을 한다. 문과는 사회탐구 영역, 이과는 과학탐구 영역에서 과목을 고르게 돼 있다. 고교에서 인문 계열이 될 것이 유력한 중학생이라면 학교에서 국·영·수만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적은 것이다. 자연계열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아니면 애써 과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후 문과를 택하길 희망하는 학생은 중학생 때부터 국·영·수에만 집중하고, 과학은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수능에서 과학탐구 영역 시험을 본 수험생은 전체의 39.5%였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과학탐구 시험을 치르지 않은 나머지 60% 학생은 중·고등학교 때 과학 공부를 안 했다고 보면 된다”며 “현행 대입 제도로는 중·고등학교 때 과학 수업을 아예 안 듣고 0점을 받아도 정시로 인문계열 학과에 진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연세대에 진학하는 중동고 3학년 최원준군은 “진학할 계열이 확실하면 중학교 때부터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대학 합격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이란 ‘버릴 과목은 과감히 버린다’는 말과 같다.

대입 제도뿐 아니라 과학 수업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론 위주의 딱딱한 수업이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에 가졌던 흥미를 중학교에 진학해 잃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고생 자녀를 키우는 고모(46·대치동)씨는 “둘째는 초등학교 때 꿈이 과학자일 만큼 과학을 좋아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더니 ‘어렵고 재미없다’고 손을 놓았다”며 “중학교에서 아이들 흥미를 끌어낼 수 있게 수업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춘희 강현중 교장(과학교사)은 “실생활에선 과학과 연관 된 게 많은데 학생들이 과학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과학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중학교의 과학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감안해 과학과 다른 과목을 융합한 스팀(STEAM)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STEA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s), 수학(Mathematics)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용어다. 현재 전국 88개교가 연구학교로 선정돼 과학에 기술·공학·수학·예술 등을 접목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전국 180여 개의 스팀교사연구회가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교수법 등을 연구하고 있다. 김헌수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교육연구관은 “현재 2021학년도 수능(올해 초6 진급부터)을 목표로 문·이과 통합을 논의 중인 만큼 앞으론 모든 학생이 과학·인문학 소양을 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에서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학교의 노력이 중요하다. 충주미덕중은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국제중이 아닌 일반중이지만 전교생이 과학에서 보통학력 이상을 받았다. 여기엔 과학에서 낙오 학생을 한 명도 만들지 않겠다는 학교의 열정이 큰 힘이 됐다. 이영희 충주미덕중 교무부장은 “학생에 따라 수준별 교재를 활용해 방과 후와 점심시간에 맞춤형 교육을 한 결과”라며 “의무교육인 중학교에선 어떤 과목에서도 뒤쳐지는 학생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게 학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전민희·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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