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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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교사잡지에서 수학여행을 평가한 글을 읽은 일이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 학생들에게 그 감상문을 씌어 본 소감이었다. 백지를 가득히 메운 학생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몇 줄 적다가 말았다. 그야말로『백지의 감상』이더라고 했다. 그것도 졸리고 피곤했던 얘기뿐이며, 그 밖의 인상은 별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시골 아이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잠시 고궁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우리의 수학여행이다. 따라서 일정은 숨이 가쁘게 짜여지며, 마음의 여유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서둘러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하고, 그 나마도 보는 등 마는 등하고 지나쳐 버린다.
선생들은 그들 나름으로 고충이 없지 않다. 많은 학생들을 인솔하는 책임은 여간 무겁지 않다.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조마조마한 마음은 시종 긴장을 풀지 못한다.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체중이 준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었다.
또 움직이는 학생의 수가 많을수록 수학여행의 의미는 반비례로 줄어드는 경향이다.「수학」이 아니라, 그것은「관광」여행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즐거움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끌려 다니는 각박한「스케줄」속에서 관광의 인상이 남는다면 얼마나 남을까.
실제로 고교생의 경우, 수학여행을 떠나면 불미한 일들이 으레 따른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의 추태를 부리는가 하면 담배도 서슴지 않고 피운다. 그들에겐 여행이「수학」아닌 관광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학여행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은 일상의 학교생활 중에 선생과 학생, 또 학생과 학생이 함께 침식을 하면서 생활할 기회가 없다. 침식은 단순히 그것만으로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인간의 생활현장』을 따뜻한 체험을 통해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A·카네기」(미국의 실업가·강철왕)의 자서전을 보면 여행을 예찬한 대목이 많다.
그는 여행을 통해 그림과 조각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또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일상인의 경우지만, 그것이 주는 교훈적 의미는 수학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여행은 그것이「수학」인 만큼 꼭 명승고적 지만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람한 대자연의 품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공동생활을 체험하는 것도 즐겁고 보람스러울 수 있다.
교육위는 가을철을 맞아 각급 학교에 수학여행에 대한「만전」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종래의 타성적인 수학여행에서 벗어나 신풍을 불어넣을 즐거운 개선안을 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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